지난해까지 수도권에 살던 C 씨는 초등학생 딸의 학업을 위해 학군이 좋다는 서울 X동에 입성했다. 물론 전세살이다.
C 씨는 가족의 서울 입성이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 보람 또한 컸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우연히 듣고는 그간의 믿음이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가 딸의 성적을 자랑하다가 무심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내가 이사 오려고 애 유치원 때부터 남편한테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말도 마. 그이가 처음에는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펄펄 뛰면서 반대하는 거 있지?”
이것이 여성의 진짜 실력이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제압하고,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휘두른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오랫동안 투자하며, 심지어 그 모든 것을 남자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게 만들기도 한다.
소비시장에서 여성의 구매력은 이미 갑(甲)이다. 남성들이 직장에서 자기 분야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여성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경제 지도를 다시 그려내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 주변 상권의 맛집과 커피전문점부터 사교육과 부동산, 은행 선택까지.
그 어떤 사업 영역이든 여성들의 호응 없이는 성공을 꿈꿀 수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 마케팅에서도 가족과 여성은 동의어가 됐고, 여성들의 취향에 따라 경제가 움직이고 산업의 판도까지 바뀌는 ‘여성경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예컨대 주말 레저산업만 해도 그렇다. 수년 전까지 주말 레저는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친구들끼리 함께하는 골프나 낚시, 등산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의 주말 레저에 ‘가족과 함께’라는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새로운 트렌드가 아웃도어 캠핑과 걷기 열풍이다.
따라서 지금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형 여성 공부’다. 여자들이 수만 년간 남성의 마음을 연구해 온 것처럼, 이제는 남자들이 여성의 머릿속을 탐구할 차례다. 몇 년 전 영화(‘왓 위민 원트’) 속의 꿈만 같았던 대사는 이제 현실의 바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자가 원하는 것, 만약 이걸 안다면 세상은 당신 것이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