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한국인 교수인 내가 이곳에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대한민국의 비약적 경제성장, 제도적 민주화,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한 높은 교육열과 대학진학률을 유럽 학생들에게 자료로 보여줄 때다. 세계 어떤 나라도 이 세 가지를 50년 내에 동시에 이룬 예는 없다.
그런데 문학, 기술, 과학, 의학연구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과학기술 수준은 다양하게 평가되겠지만 단적으로 노벨상에 근접해 있는 과학기술에 종사하고 있는 연구인력이 한국은 여타 선도국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었던 황 박사의 배아줄기세포연구는 이제 미국에 역전당한 상태고, 일본은 작년에 이미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문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내려면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선정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리고 무엇보다 스웨덴 국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스웨덴어로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스웨덴 독자들의 평가와 인기 순위를 참고한다는 것은 비공식적 상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림원은 세계 대표 언어로의 번역 건수 및 각국 독자들의 평가, 그리고 사회적 변화에 끼치는 영향까지도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에 번역에만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국의 문인들이 지구촌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과학 분야의 경우에는 연구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칼 폰 린네(식물학명 분류), 셀시우스(온도계), 옹스트롬(나노단위 발견), 베르셀리우스(원소기호 명명체계 완성), 알프레드 노벨 등의 세계적 학자와 발명가들이 스웨덴에서 배출된 것은 한림원의 집중적인 기초연구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국은 1월 생명윤리 등의 이유로 금지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해금을 추진했고, 결국 5개월이 지난 시점인 며칠 전에는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해금 조치는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엄청난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연구기금 출연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국가적 이익을 중시하는 사법적 판결 때문이었다. 미국 정치인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대학연구소, 연구기금 출연기관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미국 사회를 설득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역시 황 박사의 ‘연구 해금’을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2011년 7월 캐나다 특허청은 황 박사가 2004년 서울대 연구진과 함께 공동으로 성공시킨 ‘환자맞춤형 인간복제 배아줄기세포’(일명 ‘1번 줄기세포’·NT-1)에 대한 물질특허와 방법특허를 인정했다. 물질특허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물질에 대해, 방법특허는 그 물질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2006년 ‘황우석 사태’ 당시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조작된 것으로 발표한 2005년 줄기세포와 별개로 2004년 줄기세포는 국제적으로 실체가 인정된 것이다. 이번에 미국에서 발표된 배아줄기세포복제 논문도 크게는 이 특허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니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도모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적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고 본다.
황 박사는 1, 2심에서 연구비 사기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1,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생명윤리법위반 건이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의 좀더 유연하고 국익을 고려한 전향적 판결을 기대해본다. 이제 환갑이 넘은 한 연구자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보더라도 황 박사의 연구 해금은 지금도 많이 늦었다.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퇴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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