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성 SK증권 상하이사무소장
변동환율제에서 환율은 시장에 맡겨져야 하지만 국제정책 협조라는 명분하에 왜곡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1985년 플라자합의 때도 그랬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에 따른 대내적 모순을 치유하고자 일본과 독일의 통화 가치를 강제적으로 끌어올리는 국제 정책 협조를 이끌어냈다.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40엔대에서 150엔대로 수직 폭등했다. 이 당시 회자된 유명한 얘기가 “마른 수건도 다시 짜서 쓰자”였을 만큼 일본의 엔고 불황은 대단히 심각했다.
결국 일본 경기는 하강했고, 경기 부양을 위해 사용한 초저금리 정책은 일본 경제에 치명적인 버블을 낳았다. 버블은 일본이 다시 금리를 올리자 못내 터져 버렸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 주식회사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치욕을 경험하게 됐다. 이번에도 미국이 뒤에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중국 경제권의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엔화 약세를 용인했다는 배경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 때처럼 공식적이지 않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는 플라자합의 때와는 반대로 엔화 가치의 하락을 용인했다는 점이다.
환율전쟁이 시작됐다고 벌써부터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만 엔화 약세로 촉발된 최근의 국제 경제 상황으로 중국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일본과 미국을 향해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엔화 약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제 회생에 차질이 생기면 국가 채무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통화 발행에 의존한 경기부양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그것이다.
최근 경제전문가는 물론이고 중국 경제 당국자들조차도 수출과 투자 주도로 이뤄져 온 중국의 성장모델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의 4월 산업생산, 소득지표 등 내수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중국의 성장둔화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4월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9.3%를 보여 기대치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경제성장 둔화 추세가 길어지고 3년간 64%나 오른 인건비의 상승 요인 등은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켰고 도시민들의 소득 증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허판(何帆)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7.5%) 달성은 무난할 것이다. 낙관적으로는 8% 성장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9∼10%의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중국도 위안화 가치를 내리는 것을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엔화 약세의 공포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중국 위안화의 가치 하락이라는 시나리오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세계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제품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