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 수사관-노점상 쫓고 쫓기는… 동대문 한밤의 짝퉁시장 현장 르포
25일 오후 10시경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 해외 유명 브랜드 짝퉁 시계 판매 현장에서 특허청 특별사법경찰이 노점상(오른쪽에서 두 번째)을 체포하고 있다. 이 노점상은 이날 짝퉁 시계 180여 개(정품 가격 기준 총 52억2900만 원)를 판 혐의로 적발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짝퉁 노점상의 ‘운수 나쁜 날’
붐비는 짝퉁 시장 한가운데에서 한 노점상이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가장 늦게까지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정품가가 수천만 원인 최고가 해외 유명 브랜드 남성용 시계의 짝퉁만 전문적으로 파는 노점상 A 씨(40)였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다른 노점이 단속되지 않는지 계속 살피고 있었다. 같은 짝퉁이라도 가방 지갑과 달리 시계는 국내에 생산 라인이 없어 단가가 배 가까이 비싸다. 압수됐을 때 손실이 더 크다.
○ 특별 단속반 “너만 기다렸다”
“시계가 널렸어요. 지금입니다.” 같은 시간 모자를 눌러쓰고 멀찍이서 A 씨를 지켜보던 한 정보원이 짝퉁 단속반에 전화를 걸었다. 특허청 소속 특별사법경찰 수사관 4명은 이날 오후 8시부터 동대문시장 인근 골목에 차창을 짙게 틴팅(선팅)한 승합차를 대고 A 씨를 덮치기 위한 작전을 짜고 있었다. 1개월 전 제보를 받은 뒤 A 씨의 차량과 영업시간 등을 추적한 끝에 이날을 디데이로 잡았다.
수사관들은 카카오톡으로 공유한 A 씨의 얼굴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A 씨의 노점을 향해 재빨리 차를 몰았다. 일부 노점상이 단속차량의 번호를 기억하기 때문에 속전속결해야 한다.
손님인 척 슬그머니 접근한 수사관은 순식간에 A 씨에게 수갑을 채운 뒤 주머니를 뒤져 차 열쇠부터 압수했다. 시계 노점상들은 단속에 걸리면 짝퉁 시계를 보관한 차를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열쇠를 내던지고 ‘차가 없다’며 발뺌하기 십상이다. 단속반이 들이닥치자 시계를 구경하던 한 20대 남성 손님은 짝퉁 구매만으론 처벌을 받지 않는데도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휴대전화를 놓아둔 채 달아났다.
특허청에 따르면 이날 A 씨가 팔기 위해 보관했던 시계는 24종 180여 개에 달했다. 만약 정품이었다면 총 52억2900만 원어치에 달한다. A 씨는 중국 제조공장에서 생산돼 밀수입된 이 시계들을 개당 12만∼15만 원에 하루 평균 15개가량 팔아 월 60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특허청 서울사무소는 상표법 위반 혐의로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 씨는 지난해 11월에도 짝퉁 시계를 팔다가 적발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처지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12만∼15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 해외 유명 브랜드 짝퉁 시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남성용 시계는 여성용 가방 지갑과 달리 연령별 취향 차이가 크지 않고, 정계 재계 일각에서 로비용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생기면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고가품’이라는 식의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날 A 씨가 체포되는 순간 불을 전부 껐던 동대문 짝퉁 시장 노점상은 단속반이 사라지자 금세 다시 활기를 찾았다. 다른 짝퉁 시계 노점상은 기자에게 “일주일만 벌면 벌금을 두세 번은 메울 수 있는데 장사를 쉴 수 있겠냐”고 말했다. 짝퉁 판매의 경우 벌금이 처음 걸리면 200만 원, 두 번째는 500만∼700만 원 정도 된다. 죄질이 나쁘면 첫 적발에도 실형이 선고될 수 있다.
이동걸 특허청 서울사무소장은 “인력 부족으로 많은 짝퉁 판매업자를 한꺼번에 단속하기 어려워 행태가 심한 업자를 찍어서 단속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