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맡긴 당신의 차, 길가에 불법주차된다
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대로에 차량들이 시선 유도봉으로 번호판을 가린 채 도로 한쪽에 불법 주차돼 있다. 한 룸살롱의 발레파킹 업체가 손님들의 차를 불법 주차하고 번호판을 가려준 것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제공
김 씨가 음식점에 도착하면 발레파킹 직원이 깍듯하게 김 씨의 BMW520d를 넘겨받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문 앞에 차가 준비돼 있다. 김 씨는 깍듯한 직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애마’가 주차장에 잘 모셔져 있었을 것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김 씨의 차는 인근 도로변에 불법 주차돼 있기 일쑤였다. 이 음식점과 계약을 하고 손님의 주차를 대행해주는 발레파킹 업자가 인근 도로에 손님 차를 대고 입간판으로 번호판을 가려왔던 것이다. 불법주차 단속 폐쇄회로(CC)TV를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은 강남 일대 고급 식당과 룸살롱 등에서 손님 차량을 도로변에 불법 주차하고 입간판이나 청테이프 등으로 번호판을 가리는 식으로 영업을 해온 발레파킹 업자 30명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고급 식당과 룸살롱의 발레파킹 요원이 불법 주차해 놓고 번호판을 가리다 적발된 차량 73대 중 31대(43%)가 벤츠 BMW 렉서스 등 수입차였다.
이날 취재팀이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와 언주로, 학동사거리, 청담동 명품거리 등을 둘러본 결과 번호판을 가리고 불법 주차돼 있는 차량이 여전히 도로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청담동의 한 발레파킹 요원은 손님 차량의 번호판을 가리기 위해 청테이프를 여러 개 잘라 미리 사무실에 붙여두기도 했다.
최근 서울 강남 일대 고급 음식점이나 룸살롱의 발레파킹 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불법주차가 성행하고 있다. 발레파킹 업자들은 대당 주차비 2000∼5000원을 받는다. 과거에는 주차비 외에는 따로 돈을 받지 않고 고급 식당, 룸살롱 등의 주차 서비스를 대행해줬지만 최근엔 주차료 외에도 관리비 명목으로 업소로부터 매달 150만∼200만 원을 따로 받고 있다. 주차장이 없는 식당들까지 주차가 가능해지다 보니 차를 가지고 오는 손님이 늘고 그 결과 도로변에 불법 주차를 하고 번호판을 가려주는 꼼수까지 등장했다.
최근엔 최대 1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음식점 4, 5개를 관리하는 ‘기업형 발레파킹’ 업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장애물을 세워 도로변의 주차공간을 선점한 뒤 무전기까지 동원해 조직적으로 불법 주차를 하고 경찰단속도 따돌린다. 이들은 대부분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고 현금만 받는데 수입이 짭짤해 강남 일대에선 업체끼리 영역 다툼을 벌일 정도다.
발레파킹을 악용한 범죄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1월에는 박모 씨(28)가 강남구 청담동의 한 유흥주점을 관리하는 발레파킹 업체에 위장 취업해 2억5000만 원 상당의 이탈리아 스포츠카인 마세라티를 훔쳐 중국으로 밀수출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음식점 발레파킹 직원이 손님의 차량 내부를 뒤져 돈을 훔치고 차량을 훼손했다가 블랙박스에 덜미를 잡혔다.
차주인 손님이 불법 주차 사실을 몰랐다면 과태료 외에는 별도로 처벌받진 않는다. 하지만 번호판을 가리고 불법 주차한 사실을 알았다면 공범으로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 도로에 있는 차량의 번호판을 가리면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발레파킹 업자들의 불법주차는 단속할 때만 잠깐 사라질 뿐 곧 다시 기승을 부린다”며 “지속적인 단속으로 도로변 불법주차를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조동주·곽도영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