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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색-언어는 달라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입력 | 2013-05-27 03:00:00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賞]가족-개인-단체 3개부문 8건 선정… 시상식 29일 열려




《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예년에 비해 밝았습니다. 힘겹던 지난날이 떠올라 목 놓아 우는 수상자도 없었습니다. 다문화상하면 으레 역경을 이겨낸 이주자들이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올해로 3년째 ‘LG와 함께하는 동아다문화賞’을 시상하면서 다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주자들의 마음이 모두 밝아지는 것을 차츰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상은 동아일보와 LG가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2010년 처음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다문화가족 세 가족 △다문화공헌 개인 2명 △다문화공헌 단체 세 곳이 선정됐습니다. 청소년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심사는 이복실 여성가족부 차관, 고선주 한국건강가정진흥원장, 양민정 한국외국어대 다문화교육원장, 한기흥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이 맡았습니다. 시상식은 29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립니다. 》

▼ 개인상 소모뚜씨…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인권운동에 온힘 ▼

이주민방송 ‘MWTV’ 기자 겸 PD. 미얀마 민주화 운동단체인 ‘버마 국민행동’ 활동가, 이주노동자밴드 ‘스탑크랙다운’ 리더, 다문화인권강사….

소모뚜 씨(38·사진)를 소개하는 수식어들이다. 1995년 한국 땅을 밟은 뒤 18년 동안 살아온 여정이 이 이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변모해 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지금은 예전처럼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다른 민족과 어울려 살아도 어색해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는 한때 한국 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박힌 인물이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등 인권운동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2009년 법무부는 ‘미얀마에서 민주화 활동에 소극적이었고 귀국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난민신청을 기각하기도 했다. 그는 ‘난민인정 결정 불허결정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해 1심에서 패소했지만 2010년 11월 2심에서 승소했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그는 “나를 싫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낸 사람이다.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인권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만 따로 지원하는 다문화정책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주민들에게는 다문화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공원 할인권이 나온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이런 식의 특혜를 불편해한다”며 “이주민들도 한국 사람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같은 조건으로 지원해줄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다문화사회”라고 강조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개인상 이사벨씨… 상담사로, 통역사로, 이주여성 ‘큰언니’ ▼

“남편한테 매일 맞는다는 여자가 많았어요. 듣고만 있을 수 없었지요.”

‘필리핀댁’ 이사벨 씨(51·사진)가 2000년 남편을 따라 광주에 와서 처음 접한 결혼 이주여성들의 삶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영어학원 강사를 시작한 그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주여성을 돕기 시작했다. 폭력 남편을 피해 도망친 이주여성들에게 월급을 털어가며 생활비와 의료비를 지원했다. 지금도 그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다. 하지만 ‘봉사가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또박또박 말했다. “37세 때 결혼을 늦게 한 편이에요. 대부분 젊고 어린 다문화여성들을 보살필 수 있는 ‘큰언니’가 내 역할이에요.”

그는 이주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상담’이라고 했다. 이주여성과 남편의 갈등은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2004년부터 ‘광주여성의전화’에서 가정문제 상담봉사를 시작했다. 가정문제, 약물중독 등으로 법률적 도움이 필요한 이주여성을 위해 통역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을 전해들은 인근 주민들의 도움으로 2010년 광주북구청소년수련관에 ‘이주여성사랑방’을 차렸다. 이주여성들 스스로 모이고 도울 수 있는 문화공간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다문화가정 자녀 60여 명을 대상으로 ‘모국어 문화교실’을 열어 어머니 나라의 언어문화 바로알기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라는 현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보다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 가족상 박지영씨… 장애3급 남편-뇌중풍 시어머니 지극 봉양 ▼

박지영 씨(왼쪽)는 병든 시부모와 장애가 있는 남편을 불평 한마디 없이 부양했다. 박 씨가 남편, 딸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익산=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한국의 시댁 형편은 베트남 친정보다 나을 게 없었다.

2005년 10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받은 지 사흘 만에 결혼한 20년 연상 남편 임원준 씨(52)는 젊은 시절 공사장 추락사고로 여러 차례 뇌수술을 받았지만 왼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신체3급)이었다. 남편은 결혼 직후까지 돼지를 키웠으나 구제역으로 파산한 뒤 생활비를 벌지 못했다. 노환과 뇌중풍을 앓는 시부모 봉양만 해도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만 시아버지가 진 농협 빚은 매달 꼬박꼬박 이자고지서가 날아왔다.

박지영(도티 홍 한·32) 씨는 전북 익산시 왕궁면 온수리로 시집와서도 베트남에서처럼 홀로 온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남편이 장애인인 줄 모르고 결혼했지만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에 온 뒤로 집 근처 병원에서 청소일을 하는 틈틈이 상자를 주워 팔았다. 퇴근 뒤 시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서 수발을 들었다. 집에 오면 뇌중풍을 앓는 시어머니 안마와 말벗 역할도 빠뜨리지 않았다.

베트남 친정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 친정 동생들에게 적은 돈이라도 부쳐 주려고 마른 수건을 짜보지만 쉽지 않다. 뇌중풍을 앓는 친정어머니도 한국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싶다.

마을에서나 일터에서나 모두가 ‘복덩이’가 굴러 왔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8년 동안 모신 시아버지가 한 달 전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도 시누이집에 가 있어 요즘은 한결 수월한 편이다. 지금은 병원 주방보조로 일해 벌이도 나아졌다.

다행히 초등학교 1학년 딸 선아 양(7)이 똘똘하고 예쁘게 자라 기대가 크다. 앞으로 미용일을 배우는 게 꿈이다. 미용일로 안정적이고 여유 있게 돈을 벌어 남편, 딸과 오순도순 살면서 친정까지 돕는 게 소박한 희망이다.

익산=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 가족상 조야쥬디씨… 원어민 강사 활동하며 간호조무사 꿈꿔 ▼

필리핀에서 시집온 조야쥬디 씨(오른쪽)가 모처럼 남편 박용이 씨, 딸 둘과 집 근처로 나들이를 나왔다. 통영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제공

“어머니, 학원! 학원 가요.”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척포길의 아담한 농가주택에 사는 조야쥬디 씨(39)는 오전 9시경 시내 간호학원으로 ‘등교’하며 시어머니 유순덕 씨(70)에게 깍듯이 인사한다. 남편 박용이 씨(44)에게도 “몸조심하고 일 잘하세요”라며 약간은 어눌한 우리말로 격려를 보낸다. 남편은 인근 문어양식장에서 일한다.

2005년 주변 사람의 소개로 박 씨와 결혼해 한국생활을 시작한 그는 간호조무사 꿈을 이루기 위해 올해 3월부터 간호학원에 다니고 있다. 자격시험은 내년 3월이다. 하루 5시간씩 주5일 수업을 받는다. 이 학원 강석범 부원장은 “항상 긍정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며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어 병원에 취직하면 통역 등에도 장점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금요일은 학원이 끝나자마자 통영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 달려간다. 초등학생들에게 방과후 학습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주 4시간 강의를 하고 한 달에 48만 원을 받는다. 결혼 후 몇 년 동안은 수산물 가공공장에서도 일했다.

필리핀의 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는 “남편 수입이 적어 내가 병원에 취직해 돈을 벌어야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초등학교 2학년인 다빈(8)과 다은 양(5) 등 딸 둘을 두었다. 둘째는 장애가 있어 신체발육이 늦고 의사소통도 어렵다. 미혼인 시동생(34)도 함께 산다.

통영다문화가족지원센터 옥해숙 팀장과 최경희 방문교사는 “쥬디 씨는 주변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착하고 생활력도 남다르다”며 “가족을 돌보면서 학원 다니고 원어민 강사까지 1인 3역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고 전했다.

통영=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 가족상 조만숙씨… 마을길 포장-쉼터 리모델링 이끈 이장 ▼

천봉만 조만숙 씨 부부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다문화가족 행사장에서 다정한 모습을 선보였다. 조 씨는 “남편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자랑했다. 조만숙 씨 제공

“제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갔죠. 모르면 수천 번이고 물었어요.”

중국 출신인 조만숙 씨(46)는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안부를 묻는 일로 일과를 시작한다. 그는 ‘맏며느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좋다. “어르신들이 대견하다고 칭찬할 때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경북 영천시 고경면 석계리 이장이다. 50여 가구, 130여 명의 주민이 산다. 80% 이상이 65세가 넘는 주민들은 사람됨과 성실성을 눈여겨보고는 2010년 8월 이장으로 추대했다. ‘외국 사람, 그것도 여자가 무슨 이장이냐’며 일부 반대도 있었지만 어르신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숙원이었던 마을 농로 포장과 쉼터인 정자 리모델링을 해냈다. 최근에는 경로당에 요가교실도 마련했다. 담당 관청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민원을 건의하고 설득시킨 결실이다.

1995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할 때 남편 천봉만 씨(53)를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 화려한 생활을 꿈꿨지만 어려운 가정형편과 문화 차이는 몇 번씩 포기를 생각할 만큼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 대신 농사를 도맡아 생계를 꾸렸다. 딸 설빈 양(17)과 아들 성표 군(15)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식당과 자동차부품공장에서도 일했다. 힘들었지만 자신도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이 덕분에 2008년부터는 영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가정 방문지도사로, 올해 3월에는 경북도 다문화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조 씨는 “힘들 때마다 ‘한국에 살려고 왔다. 꿈을 좇아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열심히 사니까 주변에서 인정해줬다”고 말했다.

영천=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함께하는 사회 만드는… 당신이 희망입니다 ▼

단체상 생각나무BB센터… 이중언어 교재 만들어 아이들 학습 도와


생각나무BB센터 회원인 한 결혼이주여성이 아이들에게 모국의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회원들은 자녀들에게 엄마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꾸준히 가르쳐왔다. 생각나무BB센터 제공

“한국생활을 하는 이주여성들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재능을 발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자녀들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거든요.”

이주여성 자조모임인 ‘생각나무BB센터’의 안순화 대표(48·여)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센터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2009년 10월에 문을 연 센터의 온라인 회원은 800여 명, 오프라인 회원은 280명이다. 약 20개국 출신의 이주여성들이 가입해 있다. 센터 이름은 이주민 출신 엄마와 자녀들의 생각이 나무처럼 튼튼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붙였다. BB는 이중언어(Bilingual), 이중문화(Bicultural)라는 뜻.

회원들은 2011년 ‘우리는 하나’라는 이름의 이중언어 교재를 개발했다. 자녀들은 이 교재를 학교에 갖고 가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자랑하곤 했다. 한때는 한국말이 서툰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아이들이 모국어에 유창한 엄마를 보며 자부심을 느꼈다.

어려운 이주여성들을 돕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2011년 1월 돈을 모아 생활고를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이불을 선물했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라고. “한국에서 생활한 지 8년이 됐는데 처음으로 새 이불을 덮는다”며 감사를 표한 이주여성도 있었다.

회원들은 지난해엔 중국을 방문해 현지 어린이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소개했다. 자신들의 제2의 고향인 한국을 자랑스럽게 알리면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겠다는 센터 설립 초기의 다짐을 회원들은 잊지 않는다. 국회의원실 비서관, 이중언어 강사, 문화재단 이사 등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회원도 있다. 이런 이주여성들이 좀더 많아지는 게 이들의 꿈이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 단체상 KAIST… 융합인재과정 운영해 맞춤형 과학 교육 ▼

KAIST는 과학분야에 소질이 있는 다문화 학생을 위한 융합인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KAIST 학생인 멘토가 초등학생에게 온라인 교육을 하고 있다. KAIST 융합교육연구센터 제공

“원래 과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뚜렷한 목표는 없었는데 다문화학교를 다니며 로봇 분야에서 소질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올해 서울 로봇고에 입학한 홍예브게니 군(15)의 말이다. 그는 어머니가 러시아인이어서 KAIST가 운영하는 ‘LG 사랑의다문화학교’에 다닐 기회를 얻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흥미를 찾아내 국내에서 유일한 로봇·기계제어 분야 마이스터고로 진학했다. 앞으로 모바일 로보틱스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계획도 벌써 정했다.

그를 도운 KAIST 자연과학연구소 산하의 융합교육연구센터는 2010년부터 LG와 함께 사랑의 다문화학교 융합인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모두 67명의 초중고교생이 참여했다. 30명은 매달 한 번씩 KAIST를 직접 찾아와 수업을 듣는다. 초중고교 수준을 나눠 실험수업을 한다.

화산폭발 실험을 직접 꾸며보거나 사막의 오아시스, 물로켓, 유전자 칩 등을 만들어보는 체험형 수업을 11명의 KAIST 멘토들이 옆에서 도와줬다.

KAIST까지 직접 오기 힘든 30명의 초등학생들은 온라인 교육을 받았다. 모두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하고 실험을 위한 재료는 ‘과학상자’에 담아 보내줬다. 센터는 2010년부터 꾸준히 과학 엑스포에 학생들을 참여시키기도 했다. 체험형 교육이라 흥미도 높다. 지난해 2기 학생의 출석률은 오프라인이 94%, 온라인이 89%에 이르렀다.

융합인재과정은 학생들을 단순히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공학 분야의 소질을 맞춤형으로 키워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 과정을 거쳐 고교에 진학한 학생 18명 중 9명이 창원 과학고를 비롯한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 등에 진학하는 성과를 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단체상 전라남도… 인터넷 요금 지원-한국요리 온라인 강좌 ▼

다문화가족들이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전남도는 테마별 한국 음식 요리법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등 다문화가정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지난해 12월 현재 전남지역 결혼이주여성은 9768명, 자녀는 1만여 명이다. 국제결혼이 크게 늘면서 전남도는 지난해 6월 여성가족과에 다문화정책계를 신설했다. 20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족의 ‘정보교류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55억 원을 들여 한국어교육, 가족통합교육, 취업연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다문화가정의 통신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인터넷요금 지원사업은 반응이 좋아 매년 4억5000여만 원의 예산을 6년째 배정하고 있다. 입국한 지 7년 이내 가정을 대상으로 인터넷 사용 요금의 70%를 지원한다. 다문화가정의 갈등 요인 중 하나인 음식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온라인 강좌(jn.damunwha.com)는 테마별 한국요리 레시피를 6개 국어로 소개하고 있다.

시군에 배치된 언어지도사 23명은 다문화가정 자녀의 언어를 평가해 수준에 맞는 언어교육을 하고 언어영재교실도 운영한다. 또 어린이집 이용안내, 육아기술 등의 정보를 담은 부모교육 자료집 1000부를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만들어 배포했다. 2011년부터 시작한 ‘엄마(아빠) 나라 말 경연대회’는 다문화가정의 가족애를 더욱 두텁게 하는 촉매제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전담요원으로 일하는 이주여성 양성도 주력사업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에는 통·번역 역량강화 교육을 받은 이주여성 16명이 한국어능력시험(3급·4급)에 합격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다문화가정은 이미 우리 농촌의 보편적인 가족 형태 중 하나가 됐다”며 “우리 지역 다문화가족이 꿈과 희망을 키워가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쳐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무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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