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씨의 첫 공판이 열렸던 대구지법에는 호기심 가득한 방청객이 몰려들어 경찰이 동원될 정도였다. “이강석이 부러워 행세한 것인데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새삼스레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21세인) 저를 ‘영감님’이라고 불렀고, 개중에는 ‘각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디다.” 강 씨의 진술로 경주 영천 안동 등지의 경찰서장들이 가짜 이강석을 어떻게 환대했는지 하나둘 드러나자 법정에서는 연거푸 폭소가 터졌다.
▷강 씨 사건이 터진 후 몇 달이 지난, 이듬해 1월 23일 동아일보 4컷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은 이른바 ‘경무대 똥통 만화’를 실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똥지게를 진 2명이 다른 똥지게꾼에게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라며 허리 숙여 절 한다. 고바우 영감이 누구냐고 행인에게 물어보니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서 똥치는 분이오’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강 씨 사건은 비극으로 끝났다. 이강석은 1960년 4·19혁명 직후 권총자살을, 10개월을 복역한 강 씨는 1963년 음독자살했다.
민동용 정치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