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다만 주의점이 많다. 환불이 안 되니 비행기를 안 탄 대도 항공사에 알릴 필요가 없다는 친절한, 그러나 잔인한 영어 설명이 인터넷에 떠 있다. 온라인 체크인을 한 뒤 탑승권을 출력해 가지 않으면 벌금이 70유로(10만5000원)다. 이름처럼 날렵한 영업 덕분에 올해 수익이 전년 대비 13%나 늘었다.
같은 아일랜드 항공사인 에어링구스는 똑같은 표가 138.98유로(20만8500원)다. 국영기업답게 이름도 아일랜드어여서 읽기 쉽지 않다. 탑승권을 뽑아갈 필요는 없지만 승무원 접하기 역시 쉽지 않다. 지난주 더블린행 에어링구스에선 짐을 둘 곳이 없어 쩔쩔 매는데도 아는 척도 안했다.
경제자유화 바람을 타고 1985년 등장한 라이언에어는 혁신과 비용 절감으로 우뚝 선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뚱보에겐 항공료를 더 받겠다거나 기내 화장실 사용료를 받겠다고 했다 얻어터진 적도 있다.
독한 장사꾼 라이언에어같이 아일랜드 경제도 2000년까지 연 10%씩 성장했다. 법인세 12.5%에 매혹된 애플 아마존 등 해외기업과 동유럽 노동력이 몰려들면서 우리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기구한 역사를 지녔다고 믿었던 이 나라가 일자리 천국이 됐다. 마침내 750년을 지배하던 영국보다 잘살게 됐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만세 부를 일이었다.
그 아일랜드가 왜 2010년 “또 주권을 잃었다”며 졸지에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는지, 경제회생은 왜 그리 더딘지는 국영기업 에어링구스가 설명해 준다.
기업수익은 줄었는데 최고경영자 연봉은 아일랜드은행장보다 많은 129만유로(19억 원)다. 구조조정이 절실한 판에 노조는 회사를 재판에 걸어 연금 더 받기에 성공했다. 켈틱 타이거는 타이거이되 앞다리는 수출과 혁신으로 무장한 민간기업이고 뒷다리는 굼뜬 공공분야이니 뛸 수가 없는 거다. 대접받는 걸 당연히 여기는 공직자의 DNA, 우리로 치면 갑(甲)의 기질이 나라를 무릎 꿇린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공공분야 시간제 근로자 5만 명을 채용하겠다는 우리 정부한테 아일랜드를 들여다보라고 사정하고 싶다. 공공기관부터 일자리 나누기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충성심의 발로겠지만 공공 DNA는 드라큘라와 비슷하다. 한번 물리면 같은 드라큘라가 돼버리듯, 일단 공적 물이 들면 돌연 갑질에 익숙해진다.
당연히 아일랜드도 일자리 나누기라며 시간제 근무를 도입했다. 우리처럼 정(情) 많고 한(恨) 많고 말(言)도 많은 민족인지라 한 표 주고 한몫 챙기는 풍토 속에 여기서도 공공분야는 확대됐다. 2011년 공공지출이 국민총소득(GNI) 기준 유럽연합(EU) 최고였을 정도다.
이 나라 공공행정연구소가 2000년대 초 일찌감치 내린 결론은 섬뜩하다. 시민에 대한 헌신이 요구되는 공공분야에 유연근무 도입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건설회사에서 해직돼 더블린 작가박물관에서 일하는 빌리 카우언은 “똑똑한 사람은 다 이민 가고 멍청한 공무원과 관광업 종사자들만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늘어난 공공 드라큘라들은 지금 “임금삭감 못한다”며 정부와 맞서는 공포영화를 찍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사회당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폴 머피가 지난주 브뤼셀 유럽의회 회의장에서 “아일랜드 정부는 애플 같은 대기업에 조세회피처 역할을 하면서 서민한테는 구제금융세(bailout tax)를 뜯어낸다”며 세금고지서를 찢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더블린에선 28일 재산세 납부 마감을 앞두고 세금 거부 운동이 뜨겁다.
그 덕에 들어선 정부라면, 공무원 임금·연금부터 삭감해 재정을 튼튼히 하고 그렇게 아낀 예산을 민간분야의 생산적 투자에 돌려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그런데 혈세 먹는 공무원부터 늘리겠다니, 슈퍼갑의 눈에는 우리 국민이 그리도 만만해 보이는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