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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이종훈]위기와 극우

입력 | 2013-05-27 03:00:00


이종훈 파리 특파원

21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벌어진 극우파 이데올로그의 권총 자살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부 인사들의 잇단 과거사 왜곡 발언으로 분노하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평생 극우의 이론화에 몸 바친 역사학자이자 작가, 언론인이었던 도미니크 베네 씨(78)는 동성결혼 허용법과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고 자살했다. 프랑스 언론은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언급됐던 일본의 대표적 극우작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필명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렸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베네 씨가 ‘서구의 사무라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그의 죽음은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과 비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시마 유키오. 작가로서의 명성이 절정에 올랐던 45세(1970년)에 천황에 대한 충성과 군국주의를 향한 자위대의 각성을 요구하며 할복자살을 한 인물이다. 배우이면서 선동가였던 그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대장성 공무원을 지낸 엘리트 출신의 ‘확신범’이었다.

전후 프랑스 극우 1세대인 장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FN) 대표가 2002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2위로 결선에 진출하자 좌파가 우파 후보인 자크 시라크를 찍자며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혹자는 이를 예로 들며 프랑스의 정치적 다양성과 건강성을 언급하지만 다 옛날 얘기다. 극우는 원래 세상이 편안할 때는 문제가 안 된다.

요즘 유럽에서 활개를 치는 극우정당들은 나치 제국의 잔재가 유령처럼 떠도는 독일, 경제위기의 나락에 빠진 그리스, 대책 없이 무능한 좌파 정권에 절망한 프랑스, 그리고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처럼 과거에 잘나갔던 나라에서 발호하는 위기의 부산물이다.

유럽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극우의 망령은 더 기승을 부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현역 대통령으로서는 최저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르면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고사하고 마린 르펜 FN 대표에게도 뒤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다. 프랑스 각료 중 지지도가 가장 높은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의 인기 비결은 치안 대책과 각종 사회적 현안에서 드러난 그의 우파적 성향에 있다.

적잖은 유럽인은 겉으로는 극우를 터부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논리에 동조한다. 유럽 각국의 청년들은 사상 최고의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청소나 공사장 노동 같은 ‘3D’ 일자리는 싫다며 구걸을 택한다. ‘천한’ 3D 노동은 아프리카, 중동의 이민자나 불법 체류자의 몫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외국인에게 국가가 세금으로 수당을 주는 건 아깝다며 이민자 축소 정책을 지지한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 때 르펜 후보는 FN 창당(1972년) 이후 최고인 17.9%를 얻었다. 사르코지를 찍은 극우층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20%가 넘는다. FN의 최대 지지층은 바로 청년들이다.

그뿐인가. 세계적인 이슈인 동성결혼 허용 문제에서 극우 진영은 종교계와 찰떡궁합이다. 베네 씨의 자살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그의 과거 극우 행각을 비판하거나,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의 ‘국가대표’ 성당에서 목숨을 끊는 지극히 반(反)가톨릭적 행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극우는 원래 잘 먹고 잘사는 나라의 문제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계급을 인정하고 살아온 유럽에서조차 계층 간, 빈부 간 갈등이 전례 없이 커진 바닥에는 외국인 이민자와의 갈등, 경기 침체와 실업 같은 위기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외국인 근로자의 급증, 다문화 가정 2세 증가에 따른 차별 문제, 동성애 등이 점차 주요 이슈로 떠오를 소지가 크다. 더욱이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프랑스의 한 극우 인물 자살의 파장을 먼 나라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때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