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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희 “경기는 져도 비거리 뒤지는 건 못참아”

입력 | 2013-05-28 07:00:00

이일희. 스포츠동아DB


■ 이일희는 돌직구 스타일

주변 반대 불구에도 ‘장타’무기로 美 진출
‘죽기 살기로 하자’ 수없이 스스로 채찍질
신지애 부친 “드라이브샷은 일희가 최고”
언어 등 낯선 미국생활 당당히 정면돌파

‘너 정말 LPGA에서 뛰고 싶어?’

그는 이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때마다 ‘죽기 살기로 모든 걸 걸어보자’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일희(25·볼빅). 2010년 미 LPGA 투어로 진출한 그는 2년 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큰 돈을 벌기는커녕 해마다 시드를 걱정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미국에서 끝을 보기로 했다.

“꼭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멋있는 사람이다. 꿀릴 것 없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2년 간 LPGA 투어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던 이일희는 2011년 1월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일어났다. 3년의 고생을 견뎌내고 27일(한국시간) 열린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우승 사냥에 성공했다. 이일희는 어떤 선수일까.

○유쾌 상쾌 통쾌…동료들에겐 인기 최고

이일희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1988년생 선수들에게 “누구와 가장 친하냐”라고 물으면 “이일희”라고 하는 선수들이 많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유쾌한 성격덕분이다. 그래서 그를 걱정하는 동료들도 많다.

2011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일희에게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시즌 최종전의 결과에 따라 LPGA 투어에 살아남을지 아니면 짐을 싸게 될지 결정될 운명에 놓였다.

대회 전 동료들이 이일희를 찾아왔다.

“(신)지애가 찾아와 ‘너를 위해 기도할게. 꼭 내년에 함께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이어 (최)나연, (김)송희가 차례로 오더니 내 등을 두드려줬다.”

이일희는 그때를 회상했다. “그 당시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혼자 투어 생활을 하면서 어쩌면 그런 격려의 말을 가장 듣고 싶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동료들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이일희는 마지막 대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30명만 출전할 수 있는 투어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에 올라 극적으로 시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이일희의 단짝은 신지애다. 힘들 때 도움도 많이 받았다. 신지애는 이일희라면 자신의 일처럼 행동했다.

국내에서 뛰던 시절엔 함께 훈련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쇼트게임이 약했던 이일희는 신지애가 훈련하는 전남 영광까지 내려가 그만의 비법을 배워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신지애 덕을 많이 봤다. 생활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이일희는 신지애와 함께 지냈고, 겨울에는 훈련도 따라갔다. 정말 친한 친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경기 지고는 살아도 거리 뒤지는 건 못 참아”

“어렸을 때부터 경기에는 지고와도 비거리에서 상대 선수에게 지는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드라이브 샷 거리를 5야드 정도 더 늘릴 계획이다. 긴 코스에 대비해 롱 아이언도 중점적으로 연습할 계획이다.”

이일희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진출을 서둘렀던 것부터가 확실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골프도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절대 버리지 않았던 게 ‘장타’다.

그의 드라이브 샷 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고교 시절부터 이일희를 지켜봤던 신지애의 부친 신제섭 씨는 “드라이브 샷은 (이)일희가 최고다. 지애가 저만큼 보낼 수만 있었어도…”라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

그는 돌직구 스타일이다. 피하는 법이 없다. 정면 돌파다. 홀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환경, 언어, 성적 등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왔다.

이일희는 “빨리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우승하면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일희는 꽃을 피웠다. 그것은 진흙에서 핀 연꽃이었다. 꽃은 피우기가 힘든 법. 지나온 난관들은 그에게 거름이 될 것이다. 한 번 오른 정상, 두 번인들 못 오르랴. 그는 이제 앞만 보고 뛸 것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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