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25일로 개통 1년이 된 경인 아라뱃길은 수변공간이 잘 정비돼 있어 가족 나들이에 그만이다. 물길 따라 양쪽으로 평탄하게 난 자전거길 역시 환상적이다. 정말 멋진 곳이긴 하지만 화물을 싣고 다니는 배는 하루에 한 척을 보기 힘들다. 부두도 텅 비어 있다. 화물 수송량이 당초 계획의 7.4%에 불과해서다. 정기 노선은 중국 칭다오(靑島)와 톈진(天津)을 매주 1회 오가는 컨테이너 항로 2개뿐인데 이마저 인천터미널까지만 올 뿐 18km 수로를 지나 김포터미널로는 안 온다.
제대로 수행하는 기능은 홍수 예방뿐이다. 그러나 운하가 아닌 ‘방수로+레저 공간’을 만드는 데 그쳤다면 2조2500억 원의 공사비 중 무려 1조6000억 원을 아낄 수 있었다. 물길을 폭 80m, 깊이 6.3m로 더 파고 갑문 부두 등을 만드느라고 공사비가 3.5배로 늘어난 것이다.
운하가 부활한 것은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선 2008년이었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이 여론 반발에 부딪혀 4대강 살리기로 쪼그라들자 청와대는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이때 옛 국토해양부가 경인운하 안(案)을 슬그머니 들이밀었고 청와대가 덥석 물었다. ‘방수로가 적절하다’는 결론이 세 번 나왔지만 마침내 운하로 뒤집힌 것이다. 그 대신 이름을 아라뱃길로 바꿔 MB 색깔을 지웠다. 이처럼 아라뱃길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면 재앙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운하의 본질은 물류(物流)다. 친수(親水) 관광 지역개발 일자리 등 부수 효과도 좋지만 물류 효과가 선행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 측면에서 ‘텅 빈 뱃길’도 한 가지 쓸모는 있다. ‘한반도대운하를 팠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이다. 대운하의 후과(後果)는 아라뱃길과 비교조차 힘들다. 한강-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만 해도 19개의 갑문을 만들고 문경새재에 배가 다닐 22km 수로터널을 뚫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 띄울 수 있는 배는 2500t 이하. 대체 항로인 남서해를 움직이는 3만∼5만 t과는 운임 경쟁이 안 된다. 내륙에서는 트럭에 진다. 이런 수송로를 이용할 화주(貨主)가 있을까.
물동량 확보 외에도 문제가 많다. 아라뱃길 개통 1년이 지났지만 인천시는 수자원공사에 준공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준공 후엔 인천시가 교량 도로 등 주변 시설물을 관리해야 하는데, 연 65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과 아라뱃길의 사업자금을 조달하면서 부채가 2010년 8조1000억 원에서 2012년 13조8000억 원으로 늘었다. 국책사업을 대행한 공사로서 이래저래 기가 막힐 일이다.
사람이라면 출생의 비밀이 복잡해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아라뱃길은 해법이 잘 안 보인다. 토건족이 주도한 운하사업이 타당성 문제로 여러 번 폐기됐으나 ‘대운하의 대체물’로 잘못 부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시설은 놀고 있고 사업주체는 만신창이가 됐다. 아라뱃길은 엉뚱한 변수로 인해 정책이 어떻게 뒤틀리는지, 시민의 두 눈 부릅뜬 감시가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참 아름답고 거대한’ 오시범(誤示範) 사례다. 무릇 지나치면 화(禍)가 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