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대사관은 쉬쉬하며 덮으려 했다. 아까운 장병들이 여럿 목숨을 잃어 온 나라가 침통한 와중에 대사관 고위 간부가 퇴폐 안마시술소를 들락거렸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한덕수 주미대사는 사건 발생 두어 달이 지난 뒤에야 권력기관 출신의 이 간부를 한국으로 조용히 귀국시켰고 해당 부처는 사표를 받았다.
이듬해엔 기무사와 국방부 장교 출신 대사관 간부 2명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걸린 사건도 있었다. 만취한 이들은 늦은 밤에 운전하다 차를 잠시 길가에 세운 바람에 경찰 순찰차에 적발됐다. 경찰은 운전자와 동승자가 모두 만취한 사실을 밝혀내고 국무부에 통보했다. 미국에선 대리운전도 흔치 않다. 음주운전은 중범죄로 간주된다. 국방부는 사건에 연루된 무관부 소속 간부 2명을 본국 소환 조치했다. 국무부에서 대사관으로 범죄 사실이 통보되는 순간 외교관 생명은 사실상 끝장난다. 외교관이나 주재관에게 본국 소환은 씻지 못할 불명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여대생 추행 사실을 경찰에 고발한 워싱턴문화원 소속 여직원은 ‘911’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다. 911은 화재가 났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또는 아주 긴급한 위험사태에 처했을 때 구조를 요청하며 신고하는 비상번호다. ‘응급상황(emergency)’이기 때문에 경찰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워싱턴 경찰은 현장에서 피해자를 조사했지만 윤 씨를 잡지 못했다. 경찰이 윤 씨를 안 잡았는지 못 잡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윤 씨의 빠른 귀국 결정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짐 가방도 내팽개치고 공항으로 줄행랑친 것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미국 경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찰 신고 후 현장에서 잽싸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코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서운 미국 경찰과 비교하면 시위대에 멱살 잡히고 두드려 맞기까지 하는 한국 경찰은 물러도 참 너무 물러 터졌다. 일선 파출소나 지구대에선 심야에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 경찰이 밤새도록 홍역을 치른다. 국민이 경찰 무서운 줄 모르는 나라다.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중에 윤 씨와 비슷한 사고를 쳤다면 우리 경찰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