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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無勝’ 눈물 삼킨 악바리… 마침내 메이퀸

입력 | 2013-05-28 03:00:00

이일희 LPGA 바하마클래식 우승




바하마의 강풍과 폭우를 뚫고 ‘신데렐라’가 탄생했다.

돌아보면 7년간의 투어생활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올라가는 듯하면 내려갔고 다시 올라가는가 하면 이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꼭대기는 가보지도 못한 채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오기가 생겼다. 꼭대기에 꼭 가보자는….

돈이 없어 호텔이 아닌 주최 측이 마련해 준 일반 가정집에서 하우징(무료 투숙)을 하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대회에 참가해 온 이일희(25·볼빅)가 마침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LPGA 무대에 도전장을 낸 지 4년 만, 프로 데뷔 7년 만에 오른 첫 정상이다.

이일희는 27일(한국 시간) 바하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오션클럽 골프장에서 12홀로 치러진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몰아치며 최종 합계 11언더파 126타로 스코어보드 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2위를 차지한 재미교포 아이린 조(29)와는 2타 차.

이일희는 2004년 아시아태평양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프로 데뷔 전까지만 해도 동갑내기인 박인비(25·KB금융그룹) 신지애(25·미래에셋)와 함께 ‘박세리 키즈 세대’를 이끈 선두 주자였다. 그러나 2006년 프로에 데뷔한 뒤에는 국내 대회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09년 시즌이 끝난 뒤 그가 선택한 돌파구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 무대는 더욱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년 동안 정상은커녕 컷 통과에 허덕거렸다. 스폰서와 가족도 없이 혼자 투어 일정을 짜고 대회장을 쫓아다니며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는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한 그의 손을 잡아 준 것은 가족이었다. 그는 “2012년부터 어머니가 종종 미국으로 건너와 돌봐주셨는데 이것이 힘이 됐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좋은 일은 겹쳐 오는 법. 국내 골프볼업체인 볼빅과 후원계약을 맺으며 대회 비용과 집 걱정도 덜었다. 안정을 찾으면서 성적도 상승 곡선을 탔다. 2012년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른 데 이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도 공동 9위를 차지했다.

이날 공동 5위로 라운드에 나선 이일희는 첫 3홀에서 3연속 버디를 낚은 데 이어 여덟 번째 홀(파 4)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단독선두에 올랐다. 마지막 홀(파 5)에서 버디로 우승을 자축한 이일희는 “우승하고 나니 자꾸 눈물이 난다. 가장 보고 싶은 어머니에게 전화부터 해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으로 19만5000달러(약 2억1600만 원)를 받으며 올 시즌 총 30만9000달러를 벌게 된 이일희의 시즌 상금 랭킹 순위는 37위에서 12위로 껑충 뛰었다.
이일희의 우승과 함께 국산 골프공 제조업체 볼빅도 마침내 꿈을 이뤘다.

볼빅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볼빅 볼을 사용해 우승하는 선수를 배출하겠다며 2, 3년 전부터 한국 선수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에게도 골프 볼을 후원해 왔다. 꿈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해당 선수에게는 대회 우승 상금의 절반을 주겠다는 당근 책도 내놨다.

볼빅은 볼빅 볼을 사용해 처음으로 LPGA투어에서 우승한 이일희에게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의 우승 상금 절반에 해당하는 1억 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일희 외에도 이번 대회에서 공동 13위를 차지한 린지 라이트(호주)와 태국의 유망주 뽀나농 파뜰룸도 볼빅 볼을 사용하고 있다. 볼빅 관계자는 “국산 볼의 품질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