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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있는데 뭘 말하려는 거지?

입력 | 2013-05-28 03:00:00

김현탁 연출 ‘혈맥’ ★★★☆




예술의전당 제공

재미는 있는데, 무슨 내용인지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장면 하나하나는 기발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뭘 말하려는 거지’ 하고 멍한 기분이 든다.

‘혈맥’(김현탁 재구성·연출)은 고 김영수 작가(1911∼1977)가 쓴 동명의 희곡 작품(1947년)을 새롭게 해석해 재구성한 연극이다. 김영수 작가의 작품이 예술의전당에 오른 것은 올해 초 토월극장 재개관작으로 공연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72년 작)에 이어 상반기에만 두 편이다.

‘혈맥’은 한국 현대 리얼리즘 희곡의 고전으로 꼽힌다. 광복 직후 일제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서울 성북동에 설치한 방공호에서 생활하는 도시 빈민의 고달픈 삶을 그렸다.

이를 현대적으로 무대화하는 데 도전한 연출가 김현탁은 2011년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했던 ‘세일즈맨의 죽음’을 필두로 ‘메디아 온 미디어’와 ‘열녀 춘향’을 통해 익숙한 이야기를 해체하고 이를 현대적 이미지와 새롭게 결합하는 데 남다른 재주를 보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원작의 이야기는 해체되고 무대에서 재조립된다. 원작의 무대인 방공호는 버스로 바뀐다. 원작에서는 가족 단위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극에선 개인 단위의 에피소드로 잘라서 붙여놓았다.

등장인물 개인의 에피소드를 잇는 매개체는 오브제다. 털보(김정석)가 먹었던 컵라면이 바닥에 쏟아지면 다음 장면에서 카바레 댄서로 일하는 옥희(박문지)가 술에 취해 토해낸 토사물이 되는 식이다. 아들 거북이(오성택)를 미군부대에 취직시켜 방공호 생활을 청산하려는 털보와 의붓딸 복순(유진영)을 기생으로 만들어 목돈을 마련하려는 옥매(김미옥)의 어긋난 집착을 강아지인형에 투영한 점도 그렇다.

연출은 유머 넘치고 신선하다. 이상주의자인 원칠(염순식)이 뿌린 하얀 종이 삐라 더미 위에서 현실주의자인 형 원팔(최우성)과 엉켜 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선 영화 ‘러브스토리’ 중 남녀 주인공이 눈밭에서 뒹구는 장면에 나오는 ‘스노 필드’가 흘러나온다. 화류계 생활을 하지만 원칠을 짝사랑하는 옥희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를 립싱크하며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일관된 주제의식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관객들이 무대가 버스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는 점, 굳이 무대를 버스로 옮긴 이유가 불분명했다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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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2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만∼3만 원. 02-580-1300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