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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근대 공예운동가이자 수집가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품 전

입력 | 2013-05-28 03:00:00

조선의 공예를 사랑했던 일본인
‘한국미=비애’ 시각은 극복 대상




일본의 근대 공예운동가이자 이론가, 수집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한국 미술계의 은인인 동시에 비판적으로 극복해야 할 존재다.

그는 20세에 모란무늬 항아리를 구입하면서 조선 도자기의 매력에 빠져 1916년부터 1940년까지 21차례 한국을 찾아 수백 점을 수집했다. 한국미를 일컫는 ‘소박한 아름다움’ ‘비애의 미’는 그가 칭한 것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4월 요미우리신문에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기고문을 다섯 차례 실었고 이듬해 5월 동아일보에도 실었다. 일제의 무력 진압에 대한 비판이었다. 1923년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을 철거하려 했을 때 막아내고 1924년엔 경복궁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다. 한국 정부는 1984년 고인이 된 그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가 서양미술에 심취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조선 미술을 재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야나기는 동북아시아 3국의 예술에 대해 ‘중국=힘=형태’, ‘일본=즐거움=색’, ‘조선=슬픔=선’이라는 도식을 제시했는데 이런 시각이 조선은 수동적이고 소극적 민족이라는 일제의 제국주의적 발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비판이다.

일본민예관이 소장한 야나기의 수집품 139점으로 구성된 ‘야나기 무네요시’ 전이 7월 21일까지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극우 행보로 한일관계가 대립하는 미묘한 시기에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1팀장은 “야나기 무네요시는 항상 숙제였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야나기를 간과해서는 안 되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그에 대한 후대의 해석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꿋꿋이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시기순으로 모두 3부로 나뉜다. 1부는 ‘유럽 근대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주제로 야나기가 서양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1910년부터 1920년대 초 청년 시절을 다룬다. 영국 판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와 홍콩 출신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그의 미술관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모델로 만든 정의신 연출가의 한일합작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도 블레이크의 시 ‘예루살렘’의 한 대목을 따왔을 정도다. 블레이크의 복제판화 ‘아담을 심판하는 신’과 그의 시 ‘호랑이’의 한 대목을 새긴 리치의 도판 ‘숲 속의 호랑이’는 국내 첫 전시작이다.

2부에는 ‘조선과의 만남’을 주제로 야나기가 동양의 조형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할 시기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나온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도자기와 금속공예, 목공예 작품이 중심이다. ‘철사운죽문항아리’ ‘연잎형개다리소반’ ‘담배상자’가 전시된다.

3부는 중국, 만주, 일본으로 확대된 야나기의 시각을 주제로 꾸며진다. 장인이 제작한 민간 공예품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는 ‘민예(민중의 공예)’ 개념을 발전시킨 과정을 볼 수 있다. 민예의 미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됐던 일본 작가 모쿠지키 쇼닌의 ‘서공장보살상’과 일본 오키나와의 독특한 문양 샘플, 야나기가 직접 만든 소박한 의자가 전시된다.

야나기의 조선 미학에 대한 비판적 극복의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야나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의 삶과 이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5000원. 02-2022-0600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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