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활력 잃은 지 오래인데甲의 위치에 군림하는 정치가 경제를 너무 거칠게 다룬다일자리는 누가 만드는가… 민주화가 절대반지일 수 없다성장과 투자 촉진 없이 무엇으로 民生 회복시킬 건가
배인준 주필
중국 전국(戰國)시대 법가(法家) 사상가들은 유가(儒家)와 달리 엄한 법과 상벌(賞罰)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경서(經書)를 불태우고 선비들을 생매장한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도 법가의 이사(李斯) 등이 사실상 주도했다. 그러나 이런 법가 사람들도 법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욕망의 충족을 향해 내닫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법을 만들면서 평민들의 경제 자유를 확대해 주기도 했다.
사람의 병을 고치겠다고 만든 약도 좋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많다면 양약이 아니고 독약이다. 법 또한 보편적 가치 실현과 다수의 복리(福利)에 지속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부작용과 후유증이 크다면 만들지 말아야 할 악법이다. ‘아니면 말고’ 식 졸속입법은 위험하다. ‘시행해보고 문제가 더 많으면 없애거나 고치면 되지’라는 생각은 무책임하다. 한번 만든 법은 없애기 힘들고 고치기도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법조차도 개폐(改廢)가 지지부진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옳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법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 2010년 음성 성매매업소 종사 여성 수가 특별법 시행 전의 집창촌 여성 수의 28배라는 실태조사 결과가 있었다. 특별법의 부작용은 더 있어 보인다. 법무행정의 최고책임자를 지낸 어느 변호사는 “집창촌을 없앤 특별법 때문에 정신 및 지체 부자유자, 어린이 등 약자 여성들이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성(性)을 둘러싼 계층 간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고 성매매가 도덕적이란 말이냐”고 다시 반문한다면 물론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만능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를 더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법(稅法)과 세정(稅政)도 그런 면이 있다. 국민에게 납세 의무가 있음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하지만 국회가 중과세(重課稅) 입법을 남발하고, 정부가 세무조사권을 과잉행사하면 도피적 대응 또는 편법 탈법의 유혹도 커질 수 있다. 편법 탈법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법도 정책도 ‘돈의 마음’을 헤아려가면서 균형과 적절성을 유지해야 실효(實效)가 있다는 속세의 현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원래 돈의 특성은 ‘덜 도덕적’이다. 정치자금 등에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고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많을까. 정치인들이 자신들은 국민세금 수조 원보다 주머닛돈 수십만 원을 더 아까워하면서 기업에 대해서는 도덕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요한다면 위선이다. 누구나 생각지도 않은 거액의 직접세를 갑자기 내야 할 상황이 되면 세금에 대한 생각이 ‘덜 도덕적’이 될 수도 있다.
법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당위론만으로 누구나 어떤 법이라도 지키게 만드는 것은 현실로 가능하지 않다. 매일 끊이지 않는 사건들을 보면 안다. 더 많은 사람이 법에 따르도록 유도하려면 준법의 부담이 탈법의 부담보다 적도록 법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업과 기업인의 불법과 탈법은 당연히 객관적 법치로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국가적 국민적 합목적성에 부합한다. 그러나 과잉징벌이 판치면 많은 돈이 나라 밖으로 달아나고, 사람도 함께 달아날 것이다. 이익이 많은 곳에 있고 싶은 것이 돈의 생리요 경제 심리이다. 사람과 돈은 또, 돈을 쓰고도 욕먹을 곳보다는 돈을 쓰면서 대접 받는 곳으로 가려 한다. 한국이 돈의 생리와 경제 심리에 부합하는 나라가 되면 내수시장도 커질 수 있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갑(甲)의 위치에서 경제를 너무 거칠게 다루고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