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10년만에 꿈틀… ‘미운 공룡새끼’ 지석훈

입력 | 2013-05-29 03:00:00

2001년 고2 때 황금사자기 MVP… 프로서 자리 못잡다 4월 NC로
이적 뒤 2루타 11개 화려한 변신




2007년 7월 어느 날, 프로야구 현대의 주전 유격수가 감독실을 찾아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2군에서 훈련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때는 이 선수도 몰랐다. 스스로 택한 2군행이 자신의 야구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릴 줄은….

주인공은 NC 지석훈(29·사진)이다. 당시 처음 현대를 이끌게 된 김시진 감독은 그를 주전 유격수로 키우려 했다. 김 감독은 시즌 초 67경기에 지석훈을 주전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그는 타율 0.176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

김 감독은 읍소를 받아들여 그를 2군으로 내려 보내고 신인 황재균을 주전으로 내세웠다. 이후 황재균은 타율 0.300으로 시즌을 마치며 이듬해에도 주전 자리를 예약했다. 2008년 시즌 중반에는 황재균이 슬럼프에 빠지자 강정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결국 지석훈은 2008년 1군 12경기에서 타율 0.000을 기록한 채 2009년 상무에 입대했다.

고교 시절 지석훈은 나주환(SK) 박경수(LG) 서동욱(넥센)과 함께 ‘고교 4대 유격수’로 불린 특급 유망주였다. 휘문고 2학년이던 200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뽑아내며 모교에 이 대회 첫 우승컵도 안겼다. 최우수선수(MVP)와 홈런왕은 그의 차지였다.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권이 없던 현대는 2003년 드래프트에서 사실상 팀의 1차 지명인 2차 1라운드 때 지석훈을 지명했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그의 방망이가 통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선 2005년 61경기에서 타율 0.179, 2006년에는 51경기에서 0.208에 그쳤다. 당시 김재박 감독은 2년 후배 차화준(현 NC)에게 기회를 더 많이 줬다.

하지만 2007년 그에게 꿈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 기회를 눈물로 날려 보냈다. 지난해부터는 김민성과 서건창까지 내야 자리를 꿰차며 넥센에는 더이상 그의 자리가 없었다. 통산 타율 0.188에 그친 ‘대수비 요원’ 지석훈은 결국 지난달 17일 NC로 트레이드됐다. 한때 그의 자리를 위태롭게 했던 차화준의 수비 불안이 NC가 그를 필요로 했던 이유였다.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기회. 지석훈은 수비는 물론이고 방망이로도 자기 존재를 증명했다. 이적 후 28경기에서 타율 0.295에 2루타 11개를 때려낸 것. 9개 구단 타자 중 그보다 2루타를 많이 친 선수는 이승엽(15개)뿐이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20대를 ‘미운 공룡 새끼’로 보내야 했던 프로 11년차 지석훈은 새 옷을 입고 드디어 자신의 전성기 기록을 쓰기 시작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