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 보호, 갈길 먼 대한민국
2일 오전 7시 48분 광주 북구 운암2동 한 사거리 정류장에 정차한 95번 시내버스. 지체장애 2급(뇌병변)인 최모 씨(58·여)가 승객 80여 명이 탄 만원버스에서 내리려고 했다. 아홉 정거장 전에 승차한 최 씨는 나중에 탄 승객들에게 밀려 버스 중간에 끼인 신세가 됐다.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뒷문 쪽으로 미리 이동하려 했지만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쉽게 가지 못했다. 마침내 내려야 할 정거장이 됐지만 불편한 몸으로 승객 사이를 헤치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 운전사가 최 씨가 내릴 수 있도록 정차해 있는 상태에서 버스 출발이 지연되는 데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하차 문 주변에 가까스로 도착한 최 씨에게 욕설로 추정되는 큰 소리를 쳤다. 이어 손으로 최 씨의 얼굴을 때리고 발로 허벅지를 네 차례 걷어찼다. 최 씨는 저항도 못한 채 “늦게 내려 미안하다. 때리지 마라”고 호소한 뒤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정거장에 2분가량 정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버스에서 내린 뒤 광주 북구 한 장애인시설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최 씨의 얼굴과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최 씨는 광주 북부경찰서에 자신을 때린 남성 승객을 찾아 처벌해 달라며 의사 소견서를 냈다.
경찰은 폭행 용의자를 잡기 위해 목격자를 찾는 전단을 배포했다. 전단을 본 주부 A 씨(43)는 경찰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남성이 문 옆에 서 있다가 최 씨에게 큰 소리를 치며 발로 걷어차자 주변 승객들이 제지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폭력을 휘두른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장 군은 박모 할머니(73)에게도 “여봐라. 네 이놈.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라고 고함을 쳤다. 치매를 앓고 있는 박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였다. 봉사활동 처분을 받고 함께 온 친구 김모 군(17)은 키득키득 웃으며 장 군이 막말하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당시 병실에는 막말 고교생 2명과 치매 할머니 2명뿐이었다. 철부지 고교생들의 일탈을 제지할 인솔교사나 간병인, 학부모는 병실에 없었다. 김 군은 이날 오후 5시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들의 봉사활동을 주변에 자랑하기 위해 동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27일 밤 학교 조사에서 “할머니들이 웃고 좋아해서 장난을 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이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자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며 죄를 뉘우쳤다. 학교 측은 이들을 중징계할 방침이다.
광주·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