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사회부 기자
경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 빌라 절도미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경찰은 27일 “22일 발생한 사건 장소는 이 회장 집이 아니다”고 했다가 10여 분 만에 “맞다”고 번복했다. 경찰의 말 바꾸기는 “비자금 의혹에 휘말린 CJ가 또 한 번 구설에 오르는 일을 경찰이 나서서 막았다”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 회장 집에 도둑이 든 걸 몰랐다”는 중부경찰서 해명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2일 오후 10시경 조모 씨(67)는 서울 중구 장충동 이 회장 빌라에 침입했다. 조 씨는 “술을 마셨더니 옛날에 절도했던 기억이 나 장충동을 찾았다가 낮은 철문이 보여 뛰어넘었다”고 했다. 담을 넘은 조 씨는 곧 빌라 경비원에게 발각돼 옆집 담장을 넘다가 5m 아래로 추락해 검거됐다.
사건이 알려진 27일 오후 2시경. 김도열 중부서 형사과장은 언론의 확인 요청이 들어오자 “이 회장 집이 아니다. 이 회장 집 절도 보도는 오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는 나중에 거짓말이 문제되자 “장충파출소에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길래 언론에도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과장은 “파출소에서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꼴이 됐다”며 “일부러 이 회장 집을 감출 이유가 없다”고 28일 재차 해명했다.
경찰이 몰랐다던 이 회장 집은 장충파출소와 불과 300여 m 떨어져 있다. 빌라촌에는 이 회장뿐 아니라 회장 가족도 살고 CJ경영연구소도 들어서 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는 이 회장 집을 하필 경찰만 몰랐다고 강변하니 ‘중부서는 CJ경찰서’란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이상한가?
박훈상 사회부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