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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연수]철부지 고교생의 막말 동영상

입력 | 2013-05-30 03:00:00


리샤오룽(李小龍)이란 홍콩 배우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 애들은 리샤오룽의 쌍절곤 휘두르는 흉내를 내고 다녔다.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엔 1970, 80년대 남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영웅을 좇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당시 남자 중고교생들 중엔 홍콩영화와 무협소설에 흠뻑 빠진 사람이 많았다. 여자들은 순정소설이나 대중가수에 열광했다. 격정이 넘치는 청소년기에 집과 학교만 오가야 하는 한국의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요즘 청소년들에겐 웹툰과 컴퓨터 게임이 홍콩영화와 순정소설을 대신한다. 학교와 학생을 소재로 판타지와 싸움을 섞은 웹툰들이 청소년들에게 인기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지나친 만화도 있지만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사회 현실을 예리하게 풍자하는 작품도 있다. 부활한 귀족 드라큘라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노블레스’는 인기를 끌었던 만화다. 팬들은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을 이 만화의 명장면으로 꼽는다.

▷전남 순천의 노인요양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고교생 2명이 병상에 누워 있는 할머니들에게 이 대사를 읊으며 장난을 쳤다. 학생들은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인기 만화 캐릭터를 흉내 낸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단다. 동영상을 본 누리꾼들로부터 ‘패륜아’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요양시설을 찾아가 머리 숙여 사죄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3일 내에 전학을 가지 않으면 퇴학시키겠다는 중징계를 내렸다.

▷두 학생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교외 봉사활동을 하던 9명 중 일부였다. 다른 병실에서 성대모사를 하고 장난을 치니 노인들이 좋아하기에 만화 흉내까지 냈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요양보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났다지만 인솔 교사 없이 내보낸 학교도 잘못이다. 치매 노인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고 5일 동안 청소와 간병을 하라는 봉사활동에도 문제가 있다. 봉사활동이 자발성은 전혀 없이 처벌로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잘못했지만 퇴학 처분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