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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주먹이 운다… 주먹이 웃다

입력 | 2013-05-30 03:00:00


유우성 관장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팀파시 체육관에서 후배 선수와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낮에는 선수부, 밤에는 일반부가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퍽!’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소년의 눈엔 체육관 천장이 비쳤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학교 복도에서 뛰다 문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의 느낌이다. 멍하다 곧 눈과 골이 욱신거렸다.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또래 소년 6명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창피했다. 동물이 송곳니를 내보이며 위협을 하는 것처럼 티셔츠를 걷어 팔의 문신을 내보였다. 다시 ‘퍽!’ 이번에는 배에 묵직한 것이 꽂혔다. 충격은 명치 너머 등까지 퍼졌다. 몸이 새우처럼 구부러졌다. 또래를 겁먹게 하던 문신은 여기선 먹히지 않았다. “다음 사람 글러브와 헤드기어 쓰세요.” 관장의 말에 나머지 소년들이 차례로 링에 올랐다. 모두 힘 한 번 못 써보고 내려왔다. 덩치가 작은 경량급이라 얕봤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코치와의 스파링에 1분을 넘기는 사람이 없었다. 관장이 다가와 앉았다. 바닥에 앉은 소년들은 땀으로 범벅돼 있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라며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을 때도 이때만큼 창피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줄 알았죠? 강하니까 돈 뺏고 괴롭혀도 애들이 아무 말 못 하는 것 같았죠?”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살면 세상에 결국 여러분 혼자 남아요. 지금은 여러분이 무섭고 불편하니까 애들이 옆에 있는 거예요. 저도 예전에 싸움꾼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혼자가 되더라고요.” 》



학교 ‘짱’ 출신인 유우성 관장이 체육관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수강생을 껴안으며 웃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야채가게 아들, 논산을 제패하다

봄이 되면 남학교는 전장(戰場)이 된다. 곳곳마다 서열을 정하려는 다툼이 불꽃을 튀긴다. 어깨가 부딪히거나 눈이 마주치는 건 개전의 신호탄이다. 1990년대 말, 유독 드센 아이들이 모인 충남 논산시 논산공업고등학교도 신경전이나 주먹다짐으로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98년 봄 작은 사건이 생겼다. 갓 입학한 1학년이 ‘짱’이 된 것. 주인공은 현재 영등포팀파시라는 종합격투기체육관을 운영하는 유우성 관장(31)이다.

“어이∼.” 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 1학년생 유우성이 교문 앞에 선 2학년생을 불렀다. 등굣길 복장 점검을 하던 선도부원 중 덩치가 제일 큰 선배였다. 100kg에 육박하는 덩치 덕에 3학년생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그다.

“어이? 감히 1학년 ××가 돌았나.” 선배는 건들거리며 다가갔다. 등교하던 학생들의 눈이 일제히 그들에게 고정됐다.

1학년생 유우성은 그 모습이 우습다고 느꼈다. 큰 덩치도 겁나지 않았다. “그래 돌았다, 어쩔래!” 그는 재빨리 달려들어 선배의 허리춤을 낚아채고는 머리와 어깨로 힘껏 밀었다. 선배는 땅으로 고꾸라졌다. 주먹세례를 쏟아냈다.

“선배 나 몰러? 나 중학교 2학년 때 길거리에서 돈 뺏고 때렸잖어. 복수여!”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유우성은 학교 밖에서도 유명해졌다. 이렇게 유우성은 논산공고의 ‘짱’이 됐다.

유우성의 체력은 또래를 압도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채소가게 일을 도우며 몸에 힘이 붙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침 5시면 일어나 배추가 담긴 리어카를 끌었다. 중학생 때는 레슬링부에 들어갔다. 근육이 붙은 그의 몸을 레슬링부에서 탐냈다. “윗도리 벗어 봐.” 체육선생님은 몸을 훑어보고는 그 자리에서 유우성을 스카우트했다. 대회에 나가 도에서는 금메달을, 전국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유우성이 논산공고를 제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들이 그를 찾았다. 선생들은 유우성이 운동부 출신이라서 스승의 말에 껌뻑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논산공고는 지각과 ‘땡땡이’로 악명이 높았다. 동네 노인들이 “그 학교는 왜 그리 방학이 많어”라며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가방 없이 등교하는 학생도 부지기수.

교사들은 그를 ‘활용’하기로 했다. “우성아. 네가 선도부에 들어와서 애들 교육 좀 시켜라.” 유우성은 그길로 선도부원이 됐다. 그는 선도부장이나 진배없었다.

○ 감투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선도부원이 되고는 거칠 게 없었다. 가장 센 데다 교사들의 총애까지 받으니 든든했다. 같은 반 친구 5명이 그를 따라 선도부에 가입했다. 주위에는 점점 많은 사람이 몰렸다. 그는 등교시간에 교문 앞에 서서 가방 복장 검사를 했다. 점심시간에는 학교 뒷산을 뒤져 땡땡이치는 학생을 덮쳤다.

감투는 타락을 불러왔다. 그는 친구들의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를 툭 쳤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팔, 가슴, 얼굴로 ‘체벌’의 범위는 넓어졌다.

마침 외환 위기 여파로 아버지 사업이 망하며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유우성은 할머니와 생활하게 됐다. 아버지는 가족을 두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전 그에게 수첩 하나를 건넸다. 채소가게 외상값이 적힌 장부였다. “이거 받아서 먹고살어. 아버지가 면목이 없다.”

풍비박산 난 가정환경이 그를 더 거칠게 만들었다. 유우성은 장부에 적힌 가게를 돌았다. 채무자들은 “내가 아버지한테 물건 샀지 너한테 샀냐!”라며 문전박대했다. 할머니는 경제력이 없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악에 받쳤다. 그는 머리를 박박 밀었다.

그는 시장을 돌며 건달 흉내를 냈다. 시장에서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었다. 못되게 굴수록 상대는 돈을 쉽게 내놨다. 사나워진 눈매는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가슴에 찬 분노와 스트레스는 폭력으로 표출됐다. 말보다 손이 앞섰다. 교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은 학교 뒤로 불러 모질게 때렸다. 매일 유우성에게 맞는 학생이 늘었다. 그 많던 친구들은 유우성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2학년 어느 날, 같은 학년 친구들이 “우성이가 전학가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집단 출석 거부’를 하기로 했다. 그래도 유우성은 당당했다. ‘감투’와 ‘명분’ 말고도 자신을 따르는 친구가 많다고 믿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이랑 △△이도 내일부터 학교 안 나오겠대.” 아차 싶었다. 항상 몰려다니던 아이들이었다.

유우성은 그 친구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너도 학교 안 나올 거여?” “에이…장난쳐? 당연히 난 나오지.” 거짓말이었다. 친구의 눈에 겁이 맺혀 있었다. 그 눈에 유우성이 오히려 겁을 먹었다.

가족이 해체된 그는 친구로 외로움을 달랬다. 스스로 강해질수록 친구가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자신을 겁내고 있었다.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얘들아. 할 이야기가 있어. 들어줘.” 유우성은 종례가 끝난 뒤 같은 반 친구들 앞에 섰다. 가방을 챙기다 말고 자신을 빤히 보는 수십 개의 눈빛에 위축됐다. “괜히 나 때문에 너희가 학교 안 나오고 그럴 필요 없어. 진심으로 미안하다.”

유우성은 한참을 이야기했다.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방과후 시장통을 헤매고 다닌 일 등을 설명하며 잘못을 빌었다. 친구들이 귀를 기울이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겁주지 않고, 때리지 않고 친구들과 마주한 첫 순간이었다.

다음 날 기적은 일어났다. 집단 등교 거부가 철회된 것이다. 하지만 5명은 끝내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일일이 집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때부터 달라졌다. 더이상 친구들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3학년 때까지 자발적으로 매일 학급 청소를 담당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졸업할 때쯤 출석을 거부했던 5명은 유우성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 학교폭력 심해진 건 아이들이 약해진 탓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유우성은 이종격투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뛰어난 체력을 건전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첫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약 10년간 선수생활을 하며 2009 보스턴 워타운 비트다운, 2009 중국 영웅방 등에서 우승했다.

이종격투기 선수로 자리를 잡은 뒤 그는 길을 잃은 또 다른 ‘우성이’와 ‘피해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쓰기로 했다. 이재선 선수(33)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영등포 도장에서는 낮에는 선수부, 밤에는 일반부를 지도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밤 유우성 관장이 지도하는 일반부는 독특하게 운영된다. 학교, 직장의 ‘왕따’와 ‘은따’(은근히 따돌림 당하는 사람)를 위한 스트레스 해소 및 자신감 회복 수업을 한다. 선수와 직접 대련을 하게 해 위축된 자신을 일깨우는 게 수업의 목적이다. 이 시간만큼은 관원뿐 아니라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고등학교 내내 왕따를 당한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 왔다는 김모 씨(23)는 “예전에 왜 그렇게 당하고만 살았나 싶을 만큼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는 3월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학교폭력 가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위탁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그는 교육이 끝난 뒤 가해 학생들에게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생 때부터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몸에 문신 새기고 이런 게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아요. 세상에는 그런 거 안 하고도 강한 사람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장점을 약한 사람을 위해 쓰세요. 그게 정말 강한 것이고, 그럴 때 생기는 친구가 진짜 내 친구입니다.”

○ 에필로그

이달 초 유 관장과 수강명령 학생을 연결해준 서울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사회복지사 구혜민 씨가 전화를 받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침묵이 이어졌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저…, 강지훈(가명)인데요.” 영등포팀파시에서 코치와 스파링을 하며 문신을 내보였던 그 친구였다.

소년은 말을 이었다. “그…저…제가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마술은 좀 하거든요. 혹시 제가 마술로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소년은 그 주 토요일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수십 명의 초등학생을 앞에 두고 카드 마술을 선보였다. 구 씨는 “지훈이가 카드 마술을 하는 내내 무척 환하게 웃고 있었다”고 전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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