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해야 하나 된다/굶주리는 북녘]<상>사선을 넘는 아이들
간절한 눈빛 북한 평안남도 순천시 교외의 한 장마당에서 구걸하는 꽃제비.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 꽃제비의 얼굴에 때가 가득하다. 이 아이의 간절한 눈빛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시아프레스 김동철 제공
2012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13세 유진이(가명)는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을 팔았다. 2006년 돈을 벌어오겠다며 나간 엄마의 소식이 끊긴 후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모의 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늘 배가 고팠다. 하루 세 끼를 먹은 날이 기억에 없다. 한두 끼도 불린 국수나 강냉이밥으로 때운 적이 많다. 아예 끼니를 거르는 날도 적지 않았다. 사흘을 내리 굶어 힘없이 누워만 있었던 적도 있다. 팔고 있던 생콩나물을 씹어보기도 했다. 장마당에서 파는 ‘인조고기밥’은 그저 쳐다만 봤다. 콩을 고기처럼 갈아 넣고 만든 인조고기밥은 유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 김정은보다 무서운 굶주림
북한의 식량 사정은 2012년 김정은 체제의 본격 출범 이후 나빠지는 추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북한의 식량부족량을 약 50만 t으로 예상했으나 올해 2월 이를 65만7000t으로 늘려 잡았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계속될 경우 280만 명의 주민이 끼니를 거르는 식량부족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5월 초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대북사업 평가보고서도 올해 1분기(1∼3월) 조사대상 북한 가정(87개)의 80%가 영양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북한의 영유아를 비롯한 취약계층은 이런 식량부족 문제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올해 3월 유엔아동기금(UNICEF)과 WFP 등이 공동 발표한 북한식량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북한 어린이의 27.9%인 47만5868명이 만성화된 영양결핍 문제를 겪고 있다. 이 중 8.4%는 심각한 상태였다.
엄마와 함께 탈북한 후 대안학교 ‘물망초학교’에 다니는 5세 박재원(가명) 군은 입학 초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굴러서 교사들을 당황하게 했다. 허기진 생활에 익숙해 있던 박 군이 갑자기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은 뒤 장에 탈이 난 것. 이 학교를 운영하는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은 “아이들의 장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어 소화 문제가 자주 생기고 병원에서 관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 이대로 가면 ‘같은 민족, 다른 인종’의 비극 온다
영양이 부족해 성장하지 못하는 북한 어린이들의 몸집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진이(13)의 체구는 남한 어린이 9, 10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래 평균(156cm)보다 키가 무려 30cm가량 작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의 2011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남한의 만 11세 남자 어린이 평균 키는 144cm, 몸무게는 39kg인 반면 북한 어린이는 125cm, 23kg에 머물렀다. 남북의 키 차이가 19cm, 몸무게 차이는 16kg에 이른다.
서울대 윤지현 교수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같은 5대 기본 영양소나 비타민과 철분 요오드 같은 미량원소가 부족하면 아이들의 성장 발달은 물론이고 인지발달과 학습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아주대병원 의학유전학과 정선용 교수는 “(분단 이후) 60여 년밖에 안 흘렀기 때문에 남북 간에 유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양상태의 차이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발현이 더 잘되고 안 되고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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