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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나눔과 비움’ 왈종미술관 31일 개관식

입력 | 2013-05-31 03:00:00

올레6코스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제주생활의 중도를 주제로 연작시리즈를 내고 있는 이왈종 화백이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인근에 건립한 ‘왈종미술관’. 하얀 백자찻잔을 모티브로 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하얀 턱수염이 멋들어져 보였다. 눈매는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다. 서귀포를 마음 한가득 품은 탓에 “죽으면 천당 갈래, 서귀포 갈래”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서귀포!”라고 답을 하겠다는 이왈종 화백(68·사진). 이 화백은 ‘제주생활의 중도(中道)’ 시리즈로 화단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중도 시리즈에 ‘연기(緣起)’라는 단어를 더했다. 모든 현상의 생기 소멸 법칙을 뜻하는 불교 용어로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귀포 정착을 도운 절친한 지인이 준 면도기를 20년 가까이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그림에서 도자(陶瓷) 등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하던 이 화백이 일을 저질렀다. 좀더 나은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고픈 욕구가 ‘왈종미술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그가 살던 집을 허물고 지난해 2월 착공해 1년여 만에 건물이 제 모양을 갖추기까지 현장 근로자에게 매일 간식을 직접 배달하는 수고는 물론이고 창문 방향, 마감재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

29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인근 올레6코스가 지나는 곳에 위치한 왈종미술관은 31일 개관식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으로 한창이었다. 연면적 992m²의 3층 건물로 하얀 백자를 모티브로 했다. 밑에서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종이컵 형태로 하다 보니,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 씨가 애를 먹었다. 진통 끝에 생존 유명화가로는 드물게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 탄생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미술관에는 이 화백의 원화와 도자기, 목조각, 판화, 비디오아트 등 98점을 전시한다. 1층에 ‘어린이 미술교실’을 따로 마련한 것이 독특했다. 2005년부터 서귀포 평생학습센터 등에서 해온 서귀포지역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1년 동안 무료 과정으로 이 화백이 직접 어린이들과 만난다. 미술관 입구에는 매표소, 커피숍, 아트숍 등을 겸한 카페를 만들어 직접 운영한다.

이 화백의 작품은 행복과 불행, 자유와 꿈, 사랑과 고통, 외로움 등을 노루와 물고기, 새, 동백꽃, 자동차, 골프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갈등을 화합, 무소유로 이끄는 정겨움과 따스함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작품 정신은 ‘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미 380점의 작품을 등록했고 앞으로 계속 추가할 계획이다. 소유가 아니라 ‘나눔’과 ‘비움’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술관 개관에 맞춰 ‘다문화가정돕기 이왈종 판화전’을 여는 것도 나눔의 하나다. 이 화백은 “서귀포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행복을 얻은 만큼 이곳에 되돌려줄 것을 고민했다”며 “전시, 교육공간에다 수장고까지 마련했으니 이제부터 마음껏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경기 화성 출신으로 추계예술대 교수를 지내다 1990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귀포에 정착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