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로 가는 길]<8> 지구촌 벤처의 요람, 베를린
독일 베를린의 벤처 인큐베이터 팀 유럽 사무실에 입주한 신생 벤처기업 ‘부멜키스테’ 직원들이 팀 유럽 경영진(오른쪽)과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팀 유럽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벤처기업의 사업 모델에 대한 조언을 해줘 이들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도록 돕는다. 베를린=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지난달 15일 독일 베를린 미테지구의 본사에서 만난 얀 베커스 히트폭스 대표는 “2011년에 회사를 세워 2년 만에 ‘글로벌 기업’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히트폭스는 중소 개발사들의 게임 제작을 지원하고 새 게임을 여러 나라에 배급하는 벤처기업이다. 넥슨, 컴투스 등도 이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독일은 물론이고 미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 20개국이 넘는다. 이 때문에 공식 언어는 영어다. 회의할 때나 공문을 보낼 때, 식사시간에도 영어를 쓰도록 한다. 그런데도 이 회사가 본사를 베를린에 두길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 “사업 초기부터 세계시장 겨냥”
동아·베인 창조경제(DBCE)지수 평가에서 독일은 전체 35개국 가운데 종합 8위에 올랐지만 창조경제 4단계(아이디어 창출, 사업화, 사업 확장, 성공의 선순환) 중 사업 확장에서는 6위를 차지해 강점을 보였다. 이는 사업 초기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본 투비 글로벌(born to be global)’ 마인드와 성장 과정에서 투자는 물론이고 노하우까지 얻을 수 있는 창업가 네트워크, 정부와 대기업의 효율적인 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히트폭스가 창업 2년 만에 세계시장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벤처 인큐베이터 ‘팀 유럽’의 도움이 컸다. 독일의 성공한 벤처사업가들이 2008년 결성한 팀 유럽은 창업가의 사업 아이템을 다듬어 성공적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실제 팀 유럽의 인큐베이팅을 받아 2010년 설립된 딜리버리 히어로는 1년 만에 세계시장 성공 가능성을 검증받고 해외지사를 열었다. PC나 스마트폰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업체는 현재 한국, 중국 등 13개 국가에 진출해 55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증명된 아이템에는 본격적으로 ‘성장 사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추가 투자가 이뤄진다. 창업가들은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팀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벤처 네트워크가 투자자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팀 유럽도 자체 벤처캐피털을 보유하고 있다.
○ 대기업은 투자, 정부는 인프라 구축
팀 유럽 사무실에 입주한 ‘부멜키스테’ 직원들이 팀 유럽 경영진과 장난감의 성능을 시험해보고 있다. 이 회사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제작해 매달 가정으로 보내준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의 벤처기업 인수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야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벤처기업 텀블러를 11억 달러(약 1조232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고, 페이스북은 지난해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약 1조1200억 원)에 사들였다. 지성국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는 “유망한 벤처·중소기업을 인수하는 등 정당한 투자를 하기보다 인력을 빼내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는 일부 국내 대기업과는 사뭇 다른 행태”라고 말했다.
다만 독일의 벤처 인큐베이터 에픽 컴퍼니의 마토 페리크 대표는 “국가가 창업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무분별하게 지원하는 것보다는 창업 환경을 조성하거나 법적 규제를 개선하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런던=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