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전면재수사로 강경 대응
청와대와 정부는 원전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부품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일부 원전 가동을 중단한 사건과 관련해 민관 합동조사반을 꾸려 원전 비리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로 했다. 원전 안전관리와 평가시스템, 감독관리체계 등 원전 안전과 관련한 모든 것을 점검할 계획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3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원전의 안전과 직결된 주요 부품의 시험성적을 위조해 납품한 것은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며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엄중 처벌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오늘로 예정됐던 정 총리의 대국민 절전 담화문 발표도 무기한 연기했다. 납품 비리 사태에 대한 진상부터 철저하게 규명해 책임소재를 가린 뒤에 국민을 상대로 절전을 호소하는 게 맞는 순서라고 판단한 것이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는 “원전 부품 계약은 마피아처럼 극소수의 관련자들끼리 진행되기 때문에 얼마나 부품 위조가 만연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외국기관을 불러 조사도 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시험성적서 자체를 위조하면 제보 없이는 문제를 찾아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안전과 관련한 모든 부품에 대해 외국기관이 평가한 시험성적표 원본서류와 일일이 대조하는 심층 조사를 할 계획이다.
청와대의 또 다른 고민은 올여름 전력 수급 문제를 막기 위해 국민에게 절전 호소를 하기가 난감해졌다는 데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여름, 겨울마다 에너지 절약을 당부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상당하다”며 “그동안 ‘올해부터는 나아질 거다’라고 홍보해왔는데 원전이 중단된 상황에서 절전 없이는 대란이 우려돼 난감하다”고 말했다.
사안이 장기화될 경우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질 뿐만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원전 수출 문제 등 원전과 관련해 줄줄이 엮여 있는 현안들이 더 풀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원전 부품 비리와 감독 소홀의 책임이 현 정부가 아닌 전임 정부에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진상 규명에 더욱 의지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시험성적서 위조 케이블을 납품한 JS전선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업에도 입찰했다가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JS전선은 2011년 진행된 UAE 원전사업 케이블 부문 입찰에 참여해 5개 업체와 경쟁했으나 최종 가격입찰 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한전 관계자는 “JS전선은 국내 원전에 납품한 경험만 있는 데다 UAE 현지의 환경에 비춰 제반조건이 맞지 않아 경쟁에서 배제했다”고 말했다.
동정민·김유영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