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연구로 美서 박사 학위… 우드로윌슨센터 제임스 퍼슨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제임스 퍼슨 박사가 지난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내각 청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가 책임을 맡아 한국의 북한대학원대와 함께 진행해온 ‘북한 국제문서 조사사업(NKIDP)’ 홍보 책자. 제임스 퍼슨 박사 제공
북한 역사 및 외교문서 발굴 전문가인 미국인 제임스 퍼슨 박사(역사학)는 지난달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내가 하는 일에 북한 당국자들이 내심 불편해할 수도 있다”며 웃었다. 북한 외교문서는 은밀한 북한 내부 정치 상황을 사후에라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뒷문’ 같다는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북한 외교문서 발굴에 발을 들인 그는 미국의 세계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2006년부터 한국의 북한대학원대와 진행해 온 ‘북한 국제문제 조사사업(NKIDP)’을 지휘해 왔다. 옛 소련과 동독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중국 등 수십 개 나라가 40여 개 문서고에 보유한 북한 외교문서를 수집해 번역하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조지워싱턴대 박사과정에서 북한 역사를 연구했다.
“주체사상은 옛 소련과 중국을 추종하는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심리적 식민 상태를 청산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후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라는 실용정책에 응용됐지만 김일성 독재 강화에 활용되면서 다원주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한국 북한학계의 연구 성과를 확인하는 내용의 논문에 세계적인 독창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방대하고 새로운 자료’다. NKIDP를 통해 새로 발굴한 북한 외교문서 10만여 쪽 가운데 2만 쪽이 논문 자료로 활용됐다. 한두 나라가 아닌 수십 개국의 자료를 종합한 북한 논문이 나온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과 공부를 조화시킨 결과다.
퍼슨 박사는 어렵게 모은 자료를 세계 학자들과 공유하는 ‘국제적 나눔’도 시도한다. 윌슨센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함께 북한 외교문서를 포함한 한반도 관련 문서를 집대성해, 이달 구축하는 ‘근대 한국사 포털’ 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는 한반도 근·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검색하고 연관된 인물과 근거자료를 찾아 내려받을 수 있다.
“한반도 근·현대사를 국제화하는 아주 중요한 시도입니다. 19세기 말 이후 세계사의 큰 흐름에 한반도의 역사가 어떻게 교직되는지도 보여주죠. 역사적 문서들을 한 개인이나 기관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같은 문서를 복사하러 모든 연구자가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 갈 필요가 없도록 하자는 겁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