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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예체능 진로의 길을 묻다

입력 | 2013-06-04 03:00:00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림자’까지 고려해야




《 최근 예체능 분야 진로에 관심 있는 고교생이 많다. 특히 패션디자이너, 모델, 스포츠스타를 동경하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정작 예체능 진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려움은 무엇인지 등 해당 진로에 관한 구체적인 ‘실체’를 아는 학생은 많지 않다.

드라마 ‘패션왕’ 주인공의 실제 인물이자 국내 대표 패션디자이너인 최범석 지아이홀딩스 대표. ‘슈퍼모델’ 출신으로 알려진 모델 겸 배우 이선진 경기대 평생교육원 모델학과 교수, 프로 스포츠팀 수석트레이너 출신인 최윤혁 아주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 팀장을 최근 인터뷰해 예체능 진로에 깃든 명과 암을 들어보았다. 》

[패션디자이너] 유명 패션스쿨 나와야 한다? 경험이 곧 감각!

2009년 한국 남성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뉴욕컬렉션에 진출한 패션디자이너 최범석 씨(36).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 중 한 명인 그는 놀랍게도 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없다.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등에 있는 유명 패션스쿨을 졸업한 유학파 출신이 즐비한 패션디자인 업계에서 그가 두각을 보였던 비결은 무엇일까.

최 씨에겐 ‘현장’이 곧 학교였다. 고등학생 때 처음 노점에서 옷 장사를 시작해 서울 동대문 원단가게 직원, 부산에서 신발장사, 경기 의정부에서 빈티지 옷가게를 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모은 종잣돈으로 21세에 서울 동대문에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다’는 의미를 담은 ‘Mu(無)’라는 브랜드로 가게를 열었다.

처음 3년은 손님이 거의 찾지 않았다. 그는 실패로 보이는 이 과정을 통해서도 배웠다. 자신이 만든 옷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를 곱씹으며, 손님들이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떻게 해야 옷을 잘 팔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공장 앞에 차를 세워놓고 하루 3시간 남짓 쪽잠을 자며 생활했다.

“학력도, 배경도 내세울 것 없는 저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실력으로 경쟁해서 이기는 수밖에 없었어요. 부족한 모습은 좌절할 이유가 아니라 더 열심히 살아갈 이유였죠. 제 모습을 보면 항상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게 있었어요.”(최 씨)

최 씨는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직업현장으로 뛰어든 자신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처한 환경이나 재능에 따라 진로설계는 다양하다. 최 씨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장사를 시작한 이유는 6평짜리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모여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패션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한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최 씨의 관점에선 패션은 순수 예술이 아니라 대중의 호응을 얻어야 하는 산업인데,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감각’은 경험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력으로 얻은 감각은 결국 치열한 경쟁 속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디자인 패턴이나 봉제의 기본은 선생님이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런 기술적인 부분이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볼 시간에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세요. 원단시장에 나가도 보고 패션관련 서적도 읽고 직접 옷도 만들어보세요.”(최 씨)

[패션모델] 런웨이에 서고 난 다음의 삶도 설계해야

‘키가 커서’ ‘주위에서 한번 해보라고 권해서’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많은 학생이 이런 막연한 이유로, 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런웨이를 걷는 모델의 화려한 모습을 동경하며 패션모델을 꿈꾼다. 하지만 실제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패션모델이 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모델 겸 배우인 이선진 경기대 평생교육원 모델학과 교수(39)는 “많은 학생이 제2의 장윤주, 이수혁을 꿈꾸지만 확률은 10만분의 1 또는 그 이하”라면서 “모델이 되기 위해선 키, 신체비율 등 타고난 신체조건이 매우 중요하지만 리허설에서 수십 차례 떨어지고 수입도 거의 없는 무명생활을 견뎌내는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이 씨가 1995년 SBS 슈퍼엘리트모델선발대회 2위에 입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도 오랜 무명생활을 지냈다. 대구 경일여상(현 대구관광고등학교)을 졸업하고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의 사무보조로 사회생활을 하던 그는 우연히 패션행사에 갔다가 모델을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가 자신도 모르게 대신 지원서류를 넣어준 모델 양성기관에 합격해 교육을 받는다.

첫 행사는 대구 동성로 한 미용실의 개업행사 도우미. 오디션은 1년에만 30차례 떨어졌다. 하지만 서울에서 오디션이 열리면 하루 전날 대구에서 버스로 4∼6시간 걸려 상경해 여관에서 자며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 날에는 자신의 순서가 끝나도 다른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고 장단점을 분석하다 막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스태프들은 그런 그를 눈여겨봤고, 패션쇼 리허설에서 톱모델의 대리 역할을 하는 기회를 잡았다.

“대타모델 역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90년대 당시 톱 모델인 박영선, 이종희 선배 등의 대리 역할을 한다는 자체가 즐거웠어요. 실제 행사가 열리는 날엔 선배는 저와 무엇이 다른지를 연구했죠.”(이 씨)

대타모델을 하던 그는 1994년 박윤수 디자이너의 눈에 띄어 패션쇼에 서는 기회를 잡았고, 좋은 평가를 받아 계속 무대에 서며 경험을 쌓는다. 결국 1995년 슈퍼모델 대회에 입상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경험을 쌓았고, 경험은 우연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움켜쥘 수 있게 만든 그만의 ‘무기’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모델이 돼도 20대가 넘으면 런웨이에 서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 평생직업이 아닌 만큼 제2의 직업도 고려해야 한다. 이 씨는 경희대에서 연극영화와 의류디자인을 공부했고, 현재는 건국대 의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일 정도로 끊임없이 공부한다.

“대학 모델학과에 진학하면 모델이 되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현직 생활 이후를 생각하면 디자이너, 교사, 패션에디터 등 모델 분야와 접목해 할 수 있는 분야 학과로 진학하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이 씨)

[임상운동사] 공부에 관심 없어 체육대학에? 천만에!

운동을 좋아하는 많은 학생이 스포츠 스타를 꿈꾼다. 스포츠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하면 지도자, 해설가, 전략분석가 등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을 하다 부상을 당하는 경우, 자신이 생각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 등 다양한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최윤혁 아주대병원 스포츠의학센터 팀장(37)은 “은퇴 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미리 고민하고 설계해야 한다. 초등생 때부터 대부분 시간을 운동에만 쏟아 부은 스포츠 선수에게 주어진 직업 선택의 범위는 넓지 않은 만큼 진로 선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팀장은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유난히 좋아했지만 운동선수가 되기보단 경희대 체육대학의 스포츠의학과에 진학해 임상운동사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꿈과 직업 선택의 현실을 고려해 운동선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운동선수 전문 트레이너가 되기로 한 것.

스포츠의학을 전공하면 스포츠팀은 물론이고 기업, 병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임상운동사로 활동할 수 있다. 최 씨는 대학 4학년 때 프로야구팀인 현대유니콘스(현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너 공개채용에 합격하며 임상운동사 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는 현대 힐스테이트, GS칼텍스 프로배구단의 수석트레이너와 삼성전자 근골격계 질환 예방 운동센터 팀장 등을 거쳤다.

체육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이 체육대학에 진학하면 선택할 수 있는 전공은 스포츠심리, 스포츠경영 등 다양하다. 스포츠의학 분야 전망도 밝은 편.

스포츠의학이라고 하면 운동선수만을 대상으로 일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엔 그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한 자세로 오랜 시간을 보내거나 특정 부위의 근육 및 골격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나타나는 ‘근골격질환’은 현대사회에 등장한 대표적 질병 중 하나이기 때문. 또 최근엔 약물을 쓰지 않고 운동요법으로 질병을 치료하려는 환자가 늘고, 직원의 건강을 관리하는 기업문화가 발전하면서 기업과 병원 내에 근골격예방센터, 스포츠의학센터 등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체육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최 팀장은 잘라 말했다.

“저는 대학 시절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공부한 뒤 운동부 학생을 대상으로 운동를 하고 인체해부 등의 실습도 병행했어요. 스포츠의학 분야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물리학, 생리학, 해부학 등에 대한 의학 전문지식이 필요하므로 상당히 많은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답니다.”(최 팀장)

이태윤·유수진 기자 wol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