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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 비자금 수사때… 장남 페이퍼컴퍼니 설립

입력 | 2013-06-04 03:00:00

차남 재용씨 2004년 차명 160억 적발… 재국씨 5개월뒤 조세피난처 회사 차려
인터넷 매체 “관련계좌로 송금 시도”… 全 前대통령 비자금 유입 의혹 증폭




전재국 씨

재임 중 수천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10년 전 법정에서 “내게 남아 있는 재산은 29만1000원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차남 재용 씨 소유의 차명계좌에서 160억 원이 넘는 뭉칫돈이 발견됐다. 재용 씨가 구속된 지 불과 5개월 뒤 장남 재국 씨는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에만 있는 회사)를 차렸다.

물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걸 확인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의 ‘심증’을 굳힐 단서인 것은 분명하다.

재국 씨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의혹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누리꾼들도 나서 “이번에야말로 전 씨 일가의 재산을 낱낱이 규명할 단서가 나타났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검찰과 국세청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은 1672억 원. 추징 시효는 올해 10월 10일까지로 불과 130일을 남겨 두고 있다.

○ “비자금 수사 한창일 때 유령회사 설립”

3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한국인의 이름을 4번째로 공개한 명단에는 전재국 씨 한 명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18명 중 정치권과 관련한 인물은 재국 씨가 처음이다. 지난달 말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을 찾아내기 위해 전담팀을 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발표의 파급력은 더 컸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재국 씨는 2004년 7월 28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 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동생 재용 씨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수감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이자 어머니 이순자 씨가 전 전 대통령을 대신해 추징금 130억 원을 대납하기 두 달 전이었다.

회사를 세울 때 재국 씨는 한국 주소를 기재하지 않고 법인 설립을 중개한 싱가포르의 법률사무소만 기록했다. 하지만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의 다른 내부 문건에 이 회사의 등기이사인 재국 씨 주소로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출판업체 ‘시공사’의 본사 주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국 씨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최소 6년 이상 이 회사를 서류상으로 유지했다.

이 페이퍼컴퍼니와 연결된 계좌로 돈을 옮기려 했던 정황도 포착됐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싱가포르 법률회사와 PTN 직원들 사이의 e메일에 따르면 재국 씨는 당초 2004년 9월 22일까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이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계좌를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랍은행 계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증서류가 전달 도중 분실돼 계좌 개설이 늦어졌다. 이와 관련해 PTN 싱가포르 지사 직원들은 e메일에서 “고객(재국 씨)의 은행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모두 잠겼고 이에 고객이 크게 화를 냈다”며 버진아일랜드 지사 직원에게 서류를 다시 보내라고 독촉했다.

뉴스타파 측은 “전 씨가 특정 계좌에 넣어뒀던 돈을 페이퍼컴퍼니와 연결된 해외 비밀계좌로 급하게 옮기려고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뉴스타파는 “계좌에 들어 있던 돈의 규모는 파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추징시효 130일 남기고… 비자금 꼬리 잡히나 ▼

○ 아버지 재산 29만 원, 자녀 재산은 수백억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아버지와 달리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은 호사스러운 생활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가장 눈에 띄는 재산은 부동산. 장남 재국 씨 소유 부동산 중 개별 공시지가 기준으로 가장 비싼 토지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28 일대의 시공사 본사 주위 땅이다. 면적은 총 1061.2m²이며 토지가액만 76억1000만 원이나 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건물을 포함한 매매가가 수백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공사와 음악세계, 뫼비우스 등 시공사 계열사 3곳이 입주한 경기 파주시 문발동 521-1 음악세계 파주사옥도 재국 씨 소유다. 1998년 분양받은 이 땅은 1515m² 터에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이 들어서 있다. 시세는 m²당 64만 원 정도로 건물을 빼고 공시된 땅값이 9억7000만 원이다. 재국 씨는 2004년에 당시 미성년자였던 딸 전모 씨(28) 명의로 경기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허브빌리지’의 토지 및 건물을 사들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곳 5200m² 토지의 공시지가는 5억7200만 원 수준. 이 밖에 동생 재만 씨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토지와 용산구 한남동 건물 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동산 감정 전문가는 “이들 소유 토지의 공시지가만 합해도 130억 원이 넘는다”면서 “통상 공시지가는 매매가의 70% 수준이고, 건물을 포함하면 가치가 훨씬 커지기 때문에 전체 가치는 수백억 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9만 원짜리 호화생활 비밀 밝혀라”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 업무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보도 내용의 진위, 실체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 혐의점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모두 사실관계부터 확인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이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어 이들의 행보는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세청은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세웠다가 이름이 공개된 한국인과 그 관련 기업들 중 상당수에 대해 이미 세무조사에 착수한 만큼 재국 씨나 그가 대표로 있는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가 전격적으로 시작될 개연성도 적지 않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세청이 들여다보면 소위 냄새가 나는 것이 있고 안 나는 게 있을 것이다”라며 “누구든지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검찰은 진상을 철저히 밝혀 추락한 정의를 되살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논평을 통해 “의혹을 규명할 단서가 나타난 만큼 정부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조세정의를 확립해야 한다”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 이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재국 씨는 시공사를 통해 낸 보도자료에서 “부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실이며 탈세나 재산은닉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면서 “1989년 미국 유학생활을 일시 중지하고 귀국할 당시 갖고 있던 학비, 생활비 등을 관련 은행의 권유에 따라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국내 재산을 외국으로 반출한 사실도 없으며 현재 외국에 보유 중인 금융자산은 전혀 없다. 관계 기관의 조사가 이뤄진다면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말했다.

김철중·박재명·황인찬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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