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올해 초 만난 중국의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잦은 불장난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중국을 개탄하는 목소리였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은 사전적 의미의 대국에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맞게 정치 군사 경제적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는 ‘책임감 있는 발전하는 신형대국’을 꿈꾸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이 미국에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동안 중국의 발전은 미국의 협조와 묵인 없이는 불가능했다. 신형대국관계에서 방점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발언권과 그에 대한 일종의 ‘대가’로 중국이 국제 현안에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데 있다.
시 국가주석 취임 이후 미중 양국 정상이 7, 8일 캘리포니아의 휴양 도시에서 처음 만난다. 어떤 신형대국관계로 세계무대에 첫선을 보일지 관심이다.
양국은 대화와 협력을 서로 강조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양국은 사이버 안보문제 등으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중-일 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등을 놓고도 양국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뾰족한 해법은 없다. 중국의 한 고위 외교관은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에 “중-미 양국 관계는 ‘신뢰의 적자’ 상황”이라며 “양국 간 신뢰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대목은 양국 간 대화와 협력이 북한 핵 문제에서 모색되고 있는 점이다. 신형대국관계의 시금석이 한반도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전문가는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아주는 완충지대’라는 국가이익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세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만물유전(萬物流轉)이 물리세계의 원리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한 미국 언론에서 “나의 직감은 중국인들이 이 문제(한반도)를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만도 시 주석 등 중국 전현직 최고위 인사를 수시로 만나온 서방 최고의 중국통인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북한에 생존 공간을 제공해온 미중의 갈등과 대결이라는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