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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신호 보냈건만… 소녀들 자살 못막았다

입력 | 2013-06-05 03:00:00

광주서 여고생 2명 동반투신… 외로운 가정에서 자라 동병상련
4월부터 주변에 ‘죽고 싶다’ 말해… 고위험군 분류돼 학교 상담도 계속




10대 소녀 2명이 아파트 옥상에서 함께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소녀는 세상을 향해 견디기 힘들다는 적신호를 계속 보냈지만 결국 ‘도움의 손’을 잡지 못한 채 투신을 선택하고 말았다.

3일 오후 11시 32분경 광주 북구 모 아파트 화단에 박모(16), 한모 양(16)이 손목을 테이프로 함께 묶은 채 숨져 있는 것을 친구 민모 양(15)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낮부터 만나 함께 다니던 이들은 이날 오후 9시 47분 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평소처럼 이야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양은 한 양과 함께 손목을 테이프로 감고 민 양에겐 “우리는 한 몸인 샴쌍둥이”라며 “이제 뛰어 내리겠다”고 말했다. 민 양이 울며 계속 말렸지만 두 소녀는 “우리가 뛰어내리면 경찰에 신고해 달라”며 난간 끝에 섰다. 혼자 말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민 양이 도움을 받기 위해 옥상 출입구를 나서는 순간 두 소녀는 문을 닫고 곧바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민 양은 경찰 조사에서 “두 친구가 평소 가정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 양은 가정문제 등으로 작은아버지 집에서 생활했고 한 양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민 양의 집도 한부모 가정이다. 비슷한 처지를 이해한 세 소녀는 올해 고교에 입학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박 양과 한 양은 4월부터 “같이 자살할 사람이 있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지만 장난말로 여겨졌다고 한다.

특히 박 양은 지난달 교육부가 주관한 정서행동특성검사 1차 조사 결과 ‘자살 위험성이 있는 고위험군 학생’으로 분류돼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이라도 이 검사에서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박 양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심리 상태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학교 상담교사 이모 씨(48·여)는 “박 양은 검사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세상에 알린 것과 같다”며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해 지속적으로 상담해왔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학교 측은 박 양의 위험한 상황을 부모에게 알렸다. 박 양은 안정을 찾으라는 학교 측의 권고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등교하지 않고 경남지역의 어머니 집에서 지내왔다. 6일 동안 어머니와 지낸 박 양은 다시 학교에 나온 3일 곧바로 친구와 함께 투신했다. 학교에선 박 양과 한 양을 위기학생이라고 판단해 상담을 계속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에는 상담교사 1명이 재학생 1830명을 담당해 효과 있는 상담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광주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의지할 곳이 없던 두 소녀가 세상에 위기신호를 계속 보냈지만 사회가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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