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이었다. 남편의 생일인데 그날따라 늦게까지 일하다가 식사 시간을 놓쳤다. 오후 9시. 사무실 근처 인사동의 식당들이 문을 닫는 시간이라서 한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맞은편 음식점을 기웃거렸다. 그곳의 사장님은 평소보다 반찬 서너 가지가 모자라도 괜찮다면 들어오라고 했다.
좋다고 들어가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이번에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다른 음식점도 영업시간이 끝났을 것 같아서 대접한 것일 뿐, 반찬의 가짓수가 다 갖추어진 밥상이 아니었으니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우리 부부는 흔쾌히 그 뜻을 받아들였다.
예상대로 사장님은 매우 기뻐했다. 며칠 후 마침 단오절이라서 감사의 편지와 함께 여름을 시원하게 나시라고 부채를 몇 개 선물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친근한 이웃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엄마 세대만 해도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의미였다.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이는 것, 엄마에게 그것은 엄숙한 의식 같았다. 이는 당신 자식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내 집 안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겐 꼭 밥 한 끼를 먹여 보내야 직성이 풀렸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밥 먹었냐”로 시작하여, “밥 먹고 가라, 밥 더 먹어라” 등등 밥 이야기가 귀찮을 지경이었다.
“그놈의 밥 이야기 좀 그만하면 안 돼?”
신경질을 부려도 엄마는 절대 수그러들지 않았다. 혹시 딸이 귀찮고 바쁘다는 핑계로 얼렁뚱땅 한 끼니 건너뛸세라 감시하고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때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엄마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화를 대던 엄마의 마음을 알겠다.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이는 것, 그것이 소박하지만 진정한 사랑이었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