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사건만 남은 ‘멋진 과거’ vs 주변사건 꽉찬 ‘밋밋한 현재’
2010년 파리의 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밤거리를 홀로 헤매다 길가에 주저앉은 미국인 여행객 길(오언 윌슨) 앞에 푸조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선다. 돈 많은 자동차 수집광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1920년대식 클래식 모델이다. 차 문이 열리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을 초대한다. 그들과 함께 도착한 파티 현장은 놀랍게도 1920년대의 파리였다.
길이 생각하는 1920년대는 가장 카리스마 넘치던 시대다. 그가 흠모해 마지않는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걸작을 만들어내고 인생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던 시절. 1920년대식 푸조를 얻어 탄 길은 자신이 선망하던 바로 그때와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는 길이 원하던 모든 것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예술가들과의 만남은 그를 미치도록 흥분시킨다. 길은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나고, 헤밍웨이와 인사를 나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비평가 스타인에게 길이 쓴 소설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길은 스타인의 집에서 피카소와 함께 온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야르)를 만난다.
길은 급기야 피카소의 여인이자 과거 모딜리아니의 연인이기도 했던 아드리아나(감독이 만들어낸 캐릭터로 실존 인물이 아님)와 사랑에 빠진다. 파리의 밤거리에서 길이 아드리아나에게 귀걸이를 선물하던 순간, 마차 한 대가 그들 앞에서 멈춰 선다. 1920년대식 푸조가 그랬던 것처럼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또다시 그들을 초대한다. 마차가 길과 아드리아나를 데려간 곳은 ‘벨 에포크’(Belle Epoque·19세기 말에서 1차 세계대전 사이의 아름다운 시절)라 불리던 1890년대의 파리였다.
아드리아나에게 벨 에포크는 파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시대다. 마차는 아드리아나가 꿈에 그리던 그 아름다운 시절의 레스토랑 ‘맥심’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그곳에서 화가 로트레크를 만난다. 아드리아나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연인 피카소보다 로트레크를 더 위대한 작가로 생각한다. 로트레크는 친구인 고갱과 드가를 소개해준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1890년대의 파리에서, 자신의 마음속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그녀는 결국 1920년대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정작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고갱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공허하고 상상력도 없다고 불평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고갱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의 길에게는 1920년대가 황금시대지만,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에게 1920년대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현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아드리아나에게는 1890년대의 파리가 황금시대이지만, 1890년대를 살던 고갱에게는 공허한 현재일 뿐이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현재를 아름다운 시절로 여기지 않는 것일까.
현재의 삶에서는 수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사랑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등의 일들은 우리 인생의 축을 이루는 중심사건이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는 중심사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적인 사건이 더 많다. 우리는 중심사건을 완성하기 위해, 또는 삶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셀 수 없는 갖가지 주변사건을 겪어야 한다. 결혼이라는 중심사건을 위해서는 예식장을 잡고, 청첩장을 돌리고, 신혼여행 예약을 해야 한다. 그 바쁜 와중에도 연말정산 마감일이 다가오고, 음식물 쓰레기를 빨리 내다버리지 않으면 악취가 코를 찌른다. 결혼식 날 비가 내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 덕분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심사건만 고스란히 즐길 수가 없다. 우리에게 현재가 아름다운 시절이 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조금 멀리 떨어져 삶을 지켜보면 주변사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의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다른 사람이 경험한 사건을 들을 때 사람들은 중심사건에만 주목하게 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초점주의(focalism) 오류’라 부른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는 예쁜 신랑신부의 아름다운 결혼식만 보인다. 그들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리해야 했던 귀찮고 짜증나는 주변사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하객들은 신랑신부가 실제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고 과장된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다.
길, 아드리아나, 고갱이 열망하는 시대는 오로지 그들이 알고 있는 중심사건으로만 구성돼 있다. 자신들이 흠모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만이 그 시대의 전부인 양 착각한다. 그러니 그 시절들은 골치 아픈 주변사건들로 넘쳐나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가 흔히 “옛날이 좋았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도 중심사건만 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를 아름다운 시절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실에는 현실의 비가 내린다. 그래서 현실은 늘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가끔은 비 덕분에 우리의 인생이 더 아름다운 장면들로 채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 wooyou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