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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재호]어린이집 교사와 책 읽기

입력 | 2013-06-07 03:00:00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연일 터져 나오는 어린이집 비리는 충격적이다. 시장 바닥에 버려진 배추시래기를 걷어다가 국을 끓여 먹이기까지 했다니, 그 아이들이 원장의 손자 손녀라도 그렇게 했을까.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이를 이런 곳에 맡겨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참담할 것이다. 이런 판에 어린이집 교사들을 위한 독서지도교육을 얘기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어서 몇 자 정리해본다.

뇌 전문가인 김붕년 교수(서울대 의대 소아청소년정신과)에 따르면 인간은 영아기 유년기 학령기 청소년기까지 20여 년 동안 형성되는 뇌로 남은 인생을 산다고 한다. 특히 책 읽기는 어린이의 평생 행복을 결정하는 생각지능의 매개다. 영국은 1992년부터 갓난아기와 산모에게 책 바구니를 선물하는 북 스타트(Book Start) 운동을 벌이고 있다. 독일 일본 호주 대만 태국도 비슷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우리도 대형 병원과 지자체가 나서준다면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젓가락질처럼 책 읽는 습관도 어릴 때 익혀야 한다. 부모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지만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요즘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들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틈틈이 책을 읽어주거나, 책을 이용한 다양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책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상대는 3∼7세의 아이들이다. 가르치려 들거나 강제성을 띠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독서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이 있어야 한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10일부터 서울 관악구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들을 초청해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어린이 독서지도교육에 대해 얘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다. 주 1회 2시간씩 5주간 계속될 이 특별한 교육프로그램에는 ‘우리 아이 벌써 책과 친구 됐어요!’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과가 좋으면 대상을 확대할 생각이다. 초중등학교는 이미 희망하는 선생님들에 한해 소정의 과정을 이수토록 하고 수료증을 주고 있다. 그 대상을 한 단계 낮추려는 것이다. 독서는 아이건 어른이건 심성을 바르고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으므로 어린이집 분위기를 바꾸는 효과도 클 것이다.

우리는 싫든 좋든 때가 되면 아이들을 온갖 전자기기로 가득 찬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 어쩌면 세상은 갈수록 거대한 게임방이나 전자오락실을 닮아갈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에 온 ‘기억력의 천재’ 에란 카츠(이스라엘)는 “스마트폰이 똑똑해질수록 사람은 더 멍청해진다”고 했다. 그런 세상에 아이들을 그냥 던져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책의 가치와 소중함은 알게 한 후 내보내야 한다. 두 초등학생에게 각각 스마트기기와 종이책으로 국어문제를 풀게 했더니 종이책을 사용한 아이가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던가.”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하물며 어린 시절의 독서랴. ‘책과 노는 어린이집’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긴 안목의 가장 확실한 투자다.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