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매체 조세피난처 5차명단 발표
북한 관련 유령회사 4곳도 공개… 국정원 “구체적으로 확인 못해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 씨가 자신이 세운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있는 회사)의 계좌가 있는 아랍은행으로부터 계좌 개설 외에 업무대행 등 특별관리를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이 해외도피 중에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한국에 있는 게임업체를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나는 등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주요 인사들의 행태가 드러나고 있다. 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북한과 관련된 페이퍼컴퍼니 4곳이 세워졌다는 사실도 처음 공개됐다.
인터넷 매체인 뉴스타파는 6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취재를 통해 이런 내용을 포함한 5차 명단을 발표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전 씨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블루 아도니스’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계좌를 만들고 이 지점을 자료 보관처로 지정하면서 ‘C/O’(Care of의 약자)라는 용어를 썼다. 뉴스파타 측은 “해당 은행 지점이 블루 아도니스의 회계 행정 등을 대행한다는 의미로 매우 이례적인 서비스”라며 “극도로 은밀하게 계좌를 운영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3차 명단 공개 때 이름을 올렸던 김 전 사장과 관련해서는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외국계 게임업체 ‘RNTS 미디어’를 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왔다. 이 회사의 서류상 최대주주는 ‘SYSK 리미티드’이고 ‘SYSK 리미티드’의 유일한 주주는 ‘멀티럭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로 돼 있다. 멀티럭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는 김 전 사장의 부인 윤석화 씨와 그의 아들이 실질 소유주로 등록된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라는 게 뉴스타파 측 주장이다. 결국 2001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해외로 도피한 김 전 사장이 2개의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한국 내 업체를 운영한 것이다.
‘RNTS 미디어’는 국내 한 게임업체로부터 35억 원 규모의 프로그램을 구입하기로 계약을 맺은 뒤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이 업체로부터 올해 3월 고소됐다. 뉴스파타는 “RNTS 미디어와 관련된 네덜란드 법인이 1월 룩셈부르크 장외시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차익실현을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이 국내 게임업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한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몰수나 추징 등으로 제재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해외도피로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업체에 대한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5차 명단에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북한인 명단과 북한과 관련된 유령회사도 공개됐다. 2004년 11월 19일 버진아일랜드에 ‘래리바더 솔루션’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문광남’은 북한인으로 추정되며 주소지는 ‘평양시 모란동 긴마을2동’으로 기재돼 있다. 이곳이 평양 중심지이고, 이 회사가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했다는 정황 등을 종합해볼 때 문 씨가 인민무력부 소속일 가능성이 있다고 뉴스타파 측은 보도했다.
김철중·전지성·이재명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