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에런 프리시 글·서애경 옮김/32쪽·1만9000원·사계절
할머니와 빨간 모자 모두 늑대에게 먹히는 결말은 17세기 프랑스 샤를 페로의 것입니다. 100년 후 그림 형제는 사냥꾼에게 구출되는 이야기로 바꿔서 책을 내지요.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그림 형제 버전을 읽고 있습니다.
논픽션 작가이자 편집자인 에런 프리시가 글을 쓰고,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빨간 모자’는 두 가지 결말을 함께 들려줍니다. 배경이 현대 도시 공간으로 옮겨져 어쩌면 아이들이 더 쉽게 몰입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란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장치로 안심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지켜보는 듯 이곳저곳에 있던 눈동자들은 정작 뒷골목 자칼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작가가 내내 이야기 속 주인공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심정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 역시 그 불안을 따라가며 당연히 슬픈 결말을 예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 할머니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려주지요.
아이들은 약한 존재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으로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