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옛 미군기지 캠프페이지, 62년만에 시민에 개방하던 날
500여 명이 콘크리트 담에 건 밧줄을 동시에 잡아당기자 30여 m의 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8일 강원 춘천시의 옛 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 개방 행사의 하나로 진행된 퍼포먼스였다. 담은 금세 무너졌지만 캠프페이지가 시민에게 개방되기까지는 62년이 걸렸다. 캠프페이지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군기지 비행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춘천 명동과 춘천역 사이에 자리 잡은 춘천 도심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 2005년 부대가 폐쇄된 이후 환경오염 정화 작업 및 꽃밭 조성 등을 거쳐 이날 전면 개방됐다. 폐쇄된 전국의 미군기지 가운데 첫 전면 개방이다. 춘천시는 이곳에 ‘춘천 평화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드넓은 유채꽃밭 배경으로 “찰칵찰칵”
이날 개방 행사에는 3000여 명이 찾아와 시민 품으로 돌아온 캠프페이지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남겼다. 식전 행사로 지신밟기와 모둠 북 공연이 열렸고 기념식과 담 철거 퍼포먼스, 대학생 댄스 공연이 이어졌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담 철거는 캠프페이지 개방을 축하하고 그 의미를 많은 사람이 나누자는 뜻에서 사전 신청을 받았고 500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시민들의 인기를 가장 많이 끈 것은 드넓은 유채꽃과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이었다. 춘천시가 전면 개방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서울 여의도공원(23만 m²)의 배가 넘는 터에 경관식물을 파종한 것이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 어린이들에게는 토끼, 양, 말 등이 있는 봄내 동물농장이 최고 인기 장소였다.
시민 조복희 씨(37)는 “도심 한복판에 회색빛 높은 담이 세워져 있어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교통 불편을 초래하는 걸림돌로 인식돼 왔다”며 “도심 한복판에서 시골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생태공원이 만들어져 춘천의 자랑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빛 테마파크 조성해 야간 조명쇼
캠프페이지는 총면적이 67만여 m²(약 20만3000평)다. 아직까지 이 터 전체가 춘천시 소유는 아니다. 춘천시는 2016년까지 국방부로부터 용지 매입을 완료할 계획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본격적인 개발도 그 이후에 가능하다. 현재 조성된 꽃밭과 주말농장 등은 그 이전까지 임시로 운영되는 셈이다.
춘천역부터 성매매 집결지인 ‘난초촌’까지의 담 1km는 허물지 않았다. 8월 자진 철거 예정인 난초촌이 아직까지는 운영 중인 데다 일부 구간은 역사 기록물로 보존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시는 춘천역 앞 약 150m 구간을 벽화로 꾸밀 예정이다.
또 담을 포함한 16만5000m²(약 5만 평)에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빛 테마파크 ‘춘천월드라이트 파크’를 조성한다. 에펠탑 등 세계 각국의 상징물과 캐릭터, 숲 등의 조형물에 조명장치를 이용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야간에는 조명쇼가, 낮에는 공연과 전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9월 개장 예정으로 2016년까지 한시 운영된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폐쇄된 미군기지 가운데 부분 개방은 일부 있었지만 전면 개방은 춘천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각계각층의 개발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개발 청사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