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로 가는 길]<10·끝> 패자부활 장려하는 사회
핀란드 알토대의 스타트업 사우나에서는 매주 창업가 지원 행사가 열린다. 핀란드의 엔지니어, 기업가, 창업가들은 사업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을 강화하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는다. 에스포(핀란드)=박창규 기자 kyu@donga.com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실패의 날(Day for Failure)’이라는 낯선 행사가 열렸다. 자신이 겪은 실패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유럽 각국의 경기를 크게 위축시켰다. 핀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이자 핀란드의 대표적 수출기업인 노키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07년 이후 계속 줄었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2009년 약 40%를 정점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조선, 제지 등 핀란드의 다른 주력 산업들도 매출이 감소했다. 대기업 직원들은 정리해고를 걱정했다.
○ “실패도 자산이다”
알토스는 우선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패배감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렇게 시작된 첫 행사는 국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1년에는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 등 핀란드의 유명 기업가 30여 명이 행사에 참가해 자신의 실패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알토스에 따르면 핀란드 국민 약 500만 명 중 4분의 1이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실패의 날 행사를 지켜봤다. 이 행사는 핀란드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전파돼 지난해에는 한국, 영국, 독일, 캐나다, 스웨덴 등 16개 국가에서 열렸다.
핀란드에서 만난 벤처기업가와 학생들은 “핀란드의 벤처 생태계 구축은 현재진행형”이라며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프라와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바일게임 전문기업 로비오의 성공이다. 이 회사는 2009년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 버드’를 출시해 60개 국가의 앱스토어에서 1년 이상 게임분야 1위를 지키는 등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미카엘 헤드 로비오 최고경영자(CEO)는 앵그리 버드를 히트시키기 전까지 게임 51개를 내놓았다. 일부는 작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대부부은 실패했다. 만약 실패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면 앵그리 버드는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핀란드의 창조경제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력의 하나다. 알토스가 벤처창업가를 지원하는 ‘스타트업 사우나’를 조직하는 등 창업문화 확산에 나서자 이에 자극받은 다른 대학 학생들은 창업 동아리 ‘앙트러프러너십 소사이어티’를 만들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타피오 시크 알토대 기업가정신센터(ACE) 책임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이 주도하는 창업문화 전파는 핀란드 창업 생태계의 힘”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창업 실패 극복에 일조하고 있다. 2011년 시작된 노키아의 퇴직자 지원 프로그램 ‘노키아 브리지’는 정리해고된 직원들이 새 출발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노키아에서 1월 퇴사한 페르티 이켈레이넨 씨는 최근 정보기술(IT) 컨설팅업체를 차렸다. 그는 “노키아 브리지에서 이력서 쓰는 법, 사업기획안 작성법 등 재취업과 창업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며 “이제는 무엇에라도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성공이 중요”
핀란드 알토대의 기업가정신 커뮤니티 ‘알토스’가 시작한 ‘실패의 날’ 로고. 알토스는 2010년부터 매년 10월 13일을 실패의 날로 정해 재기할 수 있는 벤처 선순환 시스템 구축에 힘쓰고 있다. 실패의 날 홈페이지(dayforfailure.com) 캡처
헬싱키·런던·베를린=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