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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형준]한 달 전기료가 5600원이라고?

입력 | 2013-06-10 03:00:00


박형준 도쿄 특파원

한국에서 전력대란 우려가 커진다는 소식을 들으면 떠오르는 일본인이 있다. 아즈마 가나코(東奏子·33·여) 씨. 평범한 중소기업 회사원 남편(38)을 둔 가정주부인 그는 약 1년 전 “4인 가족의 한 달 전기료 500엔(약 5600원)”이라는 경험담을 일본 언론에 투고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6월 도쿄 특파원으로 단신 부임해 가전이라곤 TV 하나밖에 없던 첫 달에 전기료가 3100엔이었다. 일본 가정의 월평균 전기료는 약 1만 엔이다. 그런데 어떻게 500엔어치 전기로 생활이 가능할까.

지난해 7월 말 그의 투고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직접 아즈마 씨를 만나러 갔다. ‘시골에서 무척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말이다.

시골은 맞았다. 도쿄(東京)역에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아키루노(あきる野) 시 무사시이쓰카이치(武藏五日市)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아즈마 씨 집까지 가는 동안 3층 이상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 형편은 빈곤과는 거리가 멀었다. 2층짜리 목조 주택은 연면적이 165m²(약 50평)나 됐다. 놀라운 것은 그의 전기 절약법. 방 7개 가운데 전등이 달린 곳은 욕실 부엌 거실 등 단 3곳뿐. 전등도 밤에 오래 켜두는 게 아니다. 집안일은 해가 있을 때 끝내고 여섯 살과 세 살짜리 두 아이는 오후 7시면 재운다. 밤에 화장실을 갈 때는 태양광 충전 랜턴을 사용한다. 노랑이도 이만한 ‘전기 노랑이’가 있을까 싶다.

“냉장고가 없다”는 말에 기자가 깜짝 놀라자 그는 부엌으로 가 간장에 절여 놓은 오이와 마늘이 담겨 있는 항아리를 보여줬다. 절인 음식은 오랜 기간 상온에 놔둬도 된단다. 생선이나 육류는 가게에서 그날 먹을 만큼만 사온다. 그는 “냉장고를 없애니 전기료가 500엔대로 떨어졌다. 5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이 우리 집 ‘슈퍼 냉장고’”라고 말했다.

둘째 아들이 천기저귀를 사용하지 않게 된 2011년 봄부터는 세탁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매일 저녁 목욕을 한 후 그 물을 양동이에 받아놓고 빨래할 때 사용한다. 세탁기를 쓸 때에 비해 물 사용량이 10분의 1로 준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절약하는 전기료는 월 1300엔. 모두 집을 살 때 빌렸던 은행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다.

기자가 방문한 오후 2시 아즈마 씨 집에서 전기를 쓰고 있는 것들은 전화기 선풍기 전등 1개가 다였다. 그것도 선풍기와 전등은 기자가 손님으로 방문했다고 켠 것이라고 했다. 밤에 전등을 끄고 전화 콘센트까지 뽑으면 이 집의 순간 사용 전력은 ‘제로’가 된다. 미안한 마음에 기자는 선풍기를 슬그머니 껐다.

“이런 삶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조금만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했다. 남편도 냉장고와 일부 전등을 없애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단다. 애들도 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잘 견딘다고 했다. 잔병치레도 안 한단다.

“남이 시켜서 절전하면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옛날 전기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궁리하고 이웃집 할머니들에게 옛날 생활을 물어봤어요. 하나하나 절전에 성공할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아즈마 씨는 마치 ‘노랑이 전기 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손빨래가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오히려 아들과 하는 놀이가 하나 더 생겼다. 세탁기 버튼만 누를 때는 모르던 즐거움”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취재를 다녀온 뒤 약 1년 만에 최근 아즈마 씨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여전히 전기료는 500엔 내외지만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낸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아즈마 씨처럼 생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아즈마 씨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전력 대란 우려도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