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주임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시 주석의 바로 왼편에 앉았다. 앞서 3월 시 주석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었던 러시아, 아프리카 순방 때도 왕 주임이 동행했다.
그는 공산당 최고위층인 2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유일하게 특정한 보직이 없다. 2002년부터 11년째 당의 핵심 싱크탱크인 중앙정책연구실을 책임지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무관의 책사’로도 불린다. 시 주석이 대권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외교 부문을 담당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왕 주임이 외교에 그치지 않고 내치에 이르기까지 시 주석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왕 주임은 계파 정치가 횡행하는 중국 정가에서 정치색이 다른 3명의 주석을 연달아 보좌하고 있다. 그는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교수로 있다가 상하이방(상하이 관료 출신 모임)의 수장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에 의해 1995년 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組) 조장으로 발탁됐다. 장 전 주석의 지도 이념인 ‘3개 대표론’이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한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자방(張子房)에 빗대 장쩌민의 장자방으로도 불렸다.
장 전 주석 퇴임에 맞춰 사회과학원 부원장 등으로 물러나려 했지만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그를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으로 승진시키면서 붙잡아뒀다. 공산주의청년단파인 후 전 주석의 과학적 발전관 정립에도 왕 주임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자당(고위 관료나 혁명 원로 자제 모임)인 시 주석이 이번에 내놓은 신형대국관계도 그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부 중국권 언론에서는 그가 시 주석의 주문에 따라 미국 국가안보회의(NSC)를 본뜬 ‘국가안전위원회’ 창설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