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 논설위원
엔저의 근원은 아베노믹스다. 과감한 경기부양을 겨냥한 아베노믹스엔 ‘세 개의 화살’이 있다. 하나는 통화 팽창, 둘은 재정 확대로 모두 의도한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아베노믹스에 대한 회의가 일자 일본 정부는 세 번째 화살을 날렸는데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 투자 확대’, 즉 미시정책이다. 셋 다 국내적 정책수단이며 다들 하는 조치다. 엔저는 정책의 중간생성물일 뿐이다.
다른 강대국들은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거대한 일본경제의 회복은 세계경제에 희소식이다. 일본 시장이 살아나야 세계경제의 숨통이 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머지 나라들도 먹고산다. 비유해 ‘밀물이 들어야 함선도 뜨고 보트도 뜨며 쓰레기도 뜬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아베노믹스를 용인하고, 나아가 지지까지 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효과를 분석한 국내 경제보고서의 대부분은 “엔저 때문에 우리 수출기업이 이렇게 힘들다”는 내용이다. 이들의 논리 구성에는 큰 구멍이 있다. ‘다른 조건이 똑같을 때 엔저 영향은 어떻다’는 식으로만 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은 탁상 경제학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관용구다(보통 ceteris paribus 라는 라틴어 표현을 애용한다). 지독한 근시안이다. 세계경제가 뜨는데 다른 변수가 그대로일 리 없지 않은가.
반면 씨티은행은 ‘일본의 회복으로 세계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올랐을 때가 엔저로 엔화가 10% 절하되는 때보다 4배 정도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수치야 연구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본의 회복이 세계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교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는 어떤 위험과 기회가 있을지를 두루 살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을 상향조정하려는 것도 세계경제 회복세 때문 아닌가.
최근 일본국채 금리상승으로 인한 재정 압박, 은행보유자산 감소 등 아베노믹스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숨고르기 정도로 상당 기간 엔-달러 환율이 100∼110엔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엔저가 계속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엔저 때문에 죽겠다”는 기업은 비명만 지르고 있을 게 아니라 그제 나온 KOTRA 보고서 ‘엔저-원고 시대의 시사점’을 한번 읽어보는 게 낫겠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한 엔고가 닥치자 일본 기업은 우선 원가 절감에 주력했다. 엔고가 장기화하자 1990년대 이후에는 생산거점 해외 이전이나 해외 조달 확대, 차별화된 제조기술 축적을 통해 견뎌냈다. 40여 년 장기 엔고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진화해온 일본 기업의 사례는 우리 기업이 활용할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