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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남북 당국회담]南 ‘신뢰프로세스 첫발’ vs 北 ‘6·15선언 부활’ 동상이몽

입력 | 2013-06-11 03:00:00

■ ‘키워드’부터 다른 회담, 어떻게 될까




설레는 이산가족 10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서 한 할머니가 이산가족상봉 신청서의 내용을 수정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12,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당국회담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취임 후 세 번째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고 12, 13일 이틀간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당국회담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 온 제반 원칙들과 국민들의 여러 가지 여망을 잘 감안해 회담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잘 임해 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의장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이번 대화를 통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해 남북 공동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사회의 일치된 노력에 힘입어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전략적 변화를 시키는 데 힘을 받으려면 국제사회가 북한 도발에 대해 한목소리로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남과 북이 회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氣) 싸움, 샅바 싸움을 벌이면서 최대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려는 신경전이 팽팽한 상태다.

○ 남한의 ‘신뢰 프로세스’ vs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박근혜정부는 이번 회담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는 ‘신뢰’의 단초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라는 선전구호를 앞세우며 남북 합작과 통일전선전술을 강화하는 기회로 쓰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접근법 차이는 9, 10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접촉에서 남북이 고집한 쟁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은 회담 대표단을 ‘남측의 통일부 장관과 북측의 통일전선부장’ 또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협의·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로 명기하자고 요구했다. 이는 “신뢰는 서로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본보 단독 인터뷰)는 박근혜정부의 신뢰 프로세스 작동원리와 맞물려 있다. 북한에 신뢰를 지키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북한 당국자가 서울에 와서 약속을 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적 접근법이다.

또 대표단의 위상이 회담의 내용은 물론이고 향후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 역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회담의 격이 장관급이냐 차관급, 국장급이냐에 따라 성과도 차이가 나게 된다”며 “장관급이라면 남북관계 복원에 속도를 내겠지만 그 아래라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와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면 남북 소통의 창구가 열리겠지만 맹경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이 수석대표로 온다면 실무급 회담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 ‘6·15선언 부활’ 노리는 북 vs ‘쉬운 것부터 풀자’는 남

북한은 ‘6·15선언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의제에 집어넣자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북한은 6·15선언을 ‘우리민족끼리’ 정신의 상징물로 선전하며 외세 배격의 논리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남북회담의 선결조건으로 △대북 도발행위 중지 △핵전쟁연습 중단 확약 △남한에서 (미군의) 전쟁수단 철수 등을 요구해온 점을 고려하면 6·15선언 공동행사에 집착하는 의도가 더욱 선명해진다. 6·15 공동행사를 강행하려는 민간단체와 이를 불허하는 정부 사이의 ‘남남(南南)갈등’ 양상도 이미 벌어지고 있다. 6일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하면서 7·4성명 기념행사를 갖자고 처음 제안한 것도 북한의 이런 통일전선전술을 바탕에 깔고 있다. 박용옥 전 국방부 차관은 “이번 당국 간 회담에서 북한의 진짜 목표는 6·15선언 부활을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남북한의 접근법 차이는 개별 의제에서 협상이 시작되면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공동으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이산가족 상봉 의제를 제안했지만 각각의 문제에 대한 인식도 판이하다. 이산가족 상봉이 인도적 문제여서 상대적으로 접점을 찾기 쉽지만 관례적으로 식량 비료 등 대북지원과 연계해온 터라 이번 회담에서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합의하기 쉽고 의견 절충이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회담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대화로 나온 것은 핵을 가지고 있어 체제 안정은 자신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박근혜정부도 대북정책을 잘하고 있다는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는 상태여서 남북 모두 유약한 태도로 회담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담은 결론을 내기보다 대화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가 있다. 남북 모두 회담을 파국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숭호·이재명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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