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0시 20분경 충북 청원군 옥산면 남촌리 LG화학공장 앞 도로에서 폭주경주 직전의 스포티지R 차량 2대 사이에서 한 남성이 손을 들어 출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경찰은 운전자 2명과 수신호를 보낸 남성을 각각 도로교통법상 공동위험행위와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청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오후 11시. 차량 신호등이 점멸등으로 바뀌며 노란 불만 깜빡였다. 모여 있던 차들이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교차로에서는 갑자기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꾸는 일명 ‘드래프트’까지 했다. 도로 여기저기에 스키드 마크(차량 타이어 자국)가 마치 동양화의 난(蘭) 그림처럼 자국이 나 있었다. 폭주 경주 ‘드래그 레이스(drag race)’의 시작을 알리는 광경이다.
오창 과학산단 일대는 2003년부터 폭주족들 사이에서 ‘오창 드래그’로 통했다. ‘드래그’란 400m 직선 도로를 차 2대가 고속으로 질주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경주. 기자는 이날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이들이 벌이는 ‘광란의 질주’를 눈으로 확인했다.
구경꾼도 보였다. 20대 여성 셋은 폭주 현장을 구경하러 멀리서 차를 몰고 온 듯했다.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슬리퍼 차림의 남성 폭주족 6, 7명은 갓길에 차를 줄지어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때 흥덕경찰서 소속 경찰차가 나타났다. 경찰은 확성기로 “집에 돌아가세요. 달리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왜 이들을 검거하지 않느냐”고 묻자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경찰을 피해 도망갔던 폭주족은 20여 분이 지나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부근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한 택시 운전사는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예전에 손님을 태우고 그 앞을 지나는데 갑자기 오른쪽에서 차 두 대가 미친 듯 달려왔다. 놀라서 핸들을 확 꺾었는데 뒤에 탄 손님이 창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이날 ‘오창 드래그’는 0시 반경 인근에 잠복해 있던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이 현장을 덮치면서 막을 내렸다. 경주를 벌인 스포티지R 운전자 박모 씨(32)와 정모 씨(28)는 도로교통법상 공동위험행위 혐의로 입건됐다. 출발 신호를 보낸 자동차 딜러 윤모 씨(30) 등 3명은 방조 혐의로, 핸들을 경주용으로 바꾸는 등 차량을 개조해 준 공업사 대표 이모 씨(44)는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각각 입건됐다.
청원=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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