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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 무산 이후]朴대통령 “대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입력 | 2013-06-13 03:00:00

■ 남북관계 비정상적 관행과 단절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12일 청와대 분위기는 의외로 담담했다. 기자가 한 관계자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 서민경제 잘 챙겨야지”라는 생뚱맞은 답변이 돌아왔다. 남북회담 무산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남북관계의 첫걸음을 뗀 만큼 앞으로 한발 한발 나가면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강조한 ‘싸묵싸묵(‘천천히’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론’과 같은 맥락이다.

○ “우리에게는 안 통해” 단호한 청와대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무산의 책임 논란과 관련해 “양비론을 펴는 것은 북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단호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회담 무산의 손익계산서상 우리 정부에 마이너스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유화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회담을 위한 회담은 없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모처럼 남북 대화의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수평적 대화라는 ‘균형의 원칙’을 앞세우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대내외에 확인시켰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우리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북한이 성의 있고 진지한 자세와 행동을 보여야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작동 원리를 국민이 이해하는 계기도 됐다. 이 홍보수석은 이날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며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소개했다. 언제든 형식이 맞으면 다시 내용을 채워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에게 대한민국 새 대통령 박근혜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고조되던 4월 청와대 내에서는 “김정은이 박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빨리 알아야 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과거처럼 적당한 타협은 없다는 의미였다. 북한의 당국 간 회담 수용이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한테는 그런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고 못 박기도 했다.

○ ‘사슴 사냥 게임’으로 남북 대화 틀 바꿔야

남북이 다시 한번 ‘강(强) 대 강’으로 충돌하면서 남북 대화와 협력의 모멘텀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박근혜정부의 숙제로 남았다. 특히 남북 상호간 신뢰가 대화의 결과물이 아닌 조건이 됐을 때 남북관계가 진전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북학이 핵을 포기하면 향후 10년간 북한 주민의 소득을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지원하겠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처럼 남북이 대화의 조건에서부터 틀어지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국내외 시선은 27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한중 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북한이 다시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면 중국 측으로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당분간 한중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지원과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서 남북 간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남북 간 ‘치킨게임(한쪽이 피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게임)’을 ‘사슴 사냥 게임(stag hunt game)’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사슴 사냥 게임은 2명의 사냥꾼이 토끼와 사슴을 사냥할 경우 토끼는 혼자 사냥할 수 있지만 가치가 더 큰 사슴을 잡으려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게임 이론이다. 결국 남한과의 협력의 가치를 북한이 깨닫도록 중국과 국제사회를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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