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객원논설위원 건전재정포럼대표
창조경제는 성장 없이도 고용률을 높일 수 있는 비법처럼 들리기도 하고 대기업들의 투자 없이도 벤처기업가들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국의 고용문화는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일해야 할 정도로 고달프다. 그래서 정규직의 근로시간을 줄여주고, 그 대신 청년이나 여성들에게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고용률을 올릴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하다. 일종의 일자리 나누기라는 고용분배정책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창조적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상식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존의 ‘풀타임’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에는 동의하겠지만, 임금총액 삭감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시간외 초과근무수당이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근로시간 단축은 생각보다 큰 폭의 임금 손실을 가져올 게 틀림없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처럼 고의적인 인플레조장정책을 동원해 제품가격을 올려서라도 임금을 더 지불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직업을 갖고 있는 봉급생활자들이 물가 상승에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 국영기업 같은 공공부문은 공공요금 인상이나 정부예산 지원 등을 기대하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 방침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민간기업이다. 일자리 나누기정책을 작동시킬 만한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93만 개라는 계량적 목표까지 만들어 공약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추계해서 경기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거시정책을 운용해 나가는데 우리나라만 성장률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고용률을 높이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GDP가 늘어야 임금이 올라가든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과 성장은 동전의 양면임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금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장률을 3% 가까이 끌어올리고 내년 이후 3%를 넘어서도록 해서 일본과 같은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거시경제정책을 운영해야 한다.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민간기업의 투자이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투자를 제약하는 자금시장의 경색, 정부규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는 데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첫째로 자금시장의 경색을 막으려면 금리와 통화공급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미국이나 일본이 양적완화정책에서 출구전략으로 전환할 때의 충격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물론 일시적 자금 부족에 직면하는 기업들의 위기관리를 도와주는 미시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끝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일자리를 나눌 여력도 있는 대기업들이 노사갈등 때문에 해외투자만 늘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시장의 규제개혁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는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창조경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우리 경제의 고질적이고 상식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경제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봉균 객원논설위원 건전재정포럼대표 bkkang@ki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