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 업계의 주된 흐름 중 하나는 ‘큐레이션(Curation)’이다. 큐레이션이란 사용자의 관심사와 취향에 맞는 정보를 선별해 보여주는 서비스 방식을 일컫는다. 자신에게 딱 맞는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서비스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여러 서비스 중 최근에는 사용자가 원하는 영화를 추천해주는 서비스인 ‘왓챠(Watcha!)’가 주목을 끌고 있다. 왓챠는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영화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이전에 본 영화에 별점을 매기면 왓챠가 취향을 분석해 재미있게 볼 만한 영화를 소개한다. 정식 서비스가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별점만 매기면 나에게 꼭 맞는 영화들이 쫙!
개개인의 취향은 제각각 다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포털사이트에 ‘재미있는 영화 추천’, ‘영화 순위’ 등을 검색하고 있다. 그렇다고 원하는 영화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왓챠를 개발한 프로그램스(frograms)를 찾아갔을 때, 박태훈 대표가 꺼낸 이야기도 이와 같았다.
(박태훈 대표) “포털사이트에 영화 추천 검색을 하면 ‘자신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글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요. 이에 사람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추천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깨닫고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포털 사이트는 개인에게 맞춤화된 서비스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개인에게 꼭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게 됐습니다.”
물론 사람의 취향을 분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초 만들어낸 왓챠의 알파 버전은 현재 서비스와는 달리 불편한 점이 많았다. 박 대표가 지인 200여 명에게 의견을 물으니 혹평이 잇따랐다. ‘도대체 뭘 입력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게 뭐냐’, ‘추천해주는 건 좋은데 너무 어렵다’, ‘내가 이걸 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박 대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말로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방법을 찾아 헤맸습니다. 여러 시도 끝에, 이전에 본 영화에 별점을 매기기만 하면 추천 영화들이 나오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추천 영화가 너무 많아서 그 중에 뭘 골라야 할지 어려워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페이지 상단에 큰 이미지로 1위 추천 영화를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왓챠는 작년 8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약 10달 동안 수정을 거듭한 끝에 금년 5월 8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5월 말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출시됐다. 왓챠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4월에는 구글과 제휴를 맺었다. 현재 구글에 영화 이름을 검색하면 왓챠 별점을 볼 수 있다.
믿을 만한가요? “네, 꽤 정확합니다”
프로그램스가 왓챠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데는 과거의 경험도 컸다. 박 대표는 ‘쿠폰잇수다’라는 소셜커머스 쿠폰 추천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는 “또 실패하기는 싫었다”며 웃었다.
(김민석 이사) “쿠폰잇수다를 계기로 망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가설 검증을 해서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몸에 배었습니다. 창업 이론 같은 건 하나도 몰랐어요. 그저 다음 서비스가 또 실패하면 회사를 접어야 한다는 걱정에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어보고 주변 사람들 반응을 보자’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맨 땅에 헤딩하며 만들고, 평가 듣고, 수정하기를 반복했죠.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비스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프로그램스의 회사 구호 중 하나가 ‘퀄리티에 개같이 집착하자’이다. 이렇게 치열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어떨까. 기획, 개발, 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 힘을 쏟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영화 취향 분석 엔진인 ‘핀셋’의 정확성이다. 핀셋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주1)’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주1) 기계학습 알고리즘이란?
아이들이 처음으로 초콜릿을 먹고 '초콜릿은 달다'라는 정보를 알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아이는 초콜릿 쿠키나 초콜릿 케익 등, 아직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초콜릿으로 만든 여러 음식들도 달콤할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와 같이 기계도 어떤 것을 학습하면 그와 관련된, 그러나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인식하고 답할 수 있다. 이를 기계학습 알고리즘이라 한다. 왓챠도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한 서비스다.
(박 대표) “사용자가 서비스에 가입하면,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영화들을 제시하고 별점을 매길 것을 요청합니다. 사용자가 어느 정도 평가를 하면, 그 사람의 평가 패턴을 파악해 왓챠 사용자들 중에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찾습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좋아했는지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추천해 줍니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영화를 모두 5점 만점으로 평가한 사람들의 90%가 D라는 영화를 5점으로 평가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A, B, C를 5점으로 매긴 사람이 새로 가입하면, 왓챠는 D라는 영화를 그 사람에게 추천할 것이다. 참고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학습을 많이 할수록 정확도가 높아져,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정확해진다. 또한 사용자가 평가를 많이 할수록 좀 더 세심하게 취향을 분석한다.
왓챠의 정확도에 대해 박 대표는 “꽤 정확합니다”라고 답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추천 엔진 기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곳이 미국의 넷플릭스인데, 프로그램스의 분석 엔진 핀셋은 넷플릭스와 유사한 수준이다.
(김 이사) “왓챠가 예상하는 별점과 실제 사용자가 매기는 별점이 거의 일치합니다. 사용자가 영화 별점을 매기면 핀셋이 그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이 사용자가 안 본 영화에 각각 몇 점을 매겼는지 파악해요. 그 점수들을 종합해 예상 별점을 제시하고, 예상 별점이 높은 영화를 추천합니다. 예상 별점의 오차가 적어야 정확하겠지요.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넷플릭스와 동일한 방법으로 오차값을 계산한 결과, 넷플릭스와 오차값 수준이 비슷했습니다.”
혹시 영화 평점을 의도적으로 높인다는 ‘알바’가 개입해 정확도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자신감을 보였다.
(박 대표) “물론 평점 조작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희도 이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면 알고리즘으로 걸러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영화 취향에 패턴이 있는데, 알바의 경우 특정 영화의 평점을 올리려고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패턴이 어긋날 수 있어요. 이렇게 의심이 되는 경우는 별도로 걸러내서, 다른 사용자들이 별점을 매길 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치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스의 기술력은 팀 내 든든한 개발자들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프로그램스 직원은 2013년 6월 현재 총 24명인데, 그 중 16명이 개발자다. 직원 중 2/3가 개발자인 셈이다. 스타트업이지만 R&D 팀이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R&D 팀을 따로 두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프로그램스 R&D 팀원들은 알고리즘에 대한 공학적 연구를 진행한다.
문화 전반에 걸쳐 추천 서비스를 제공할 것
프로그램스에 투자한 벤처캐피탈 케이큐브벤처스에 따르면, 왓챠에서 10개월 동안 누적한 영화 별점 수는 2,100만 개 이상이다. 반면, 네이버가 지난 10년 동안 누적한 영화 별점의 수는 약 600만 개다. 대형 포털사이트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박 대표) “왓챠의 경우, 영화 별점을 매겼을 때 사용자가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있기 때문에 별점을 많이 누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왓챠를 이용하면 영화 별점을 매기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영화 추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죠. 반면, 포털사이트에서 영화 별점을 매길 경우 사용자가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많은 사용자들이 포털사이트에서 영화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고, 왓챠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지 않았나 합니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사용자 리뷰를 보면 ‘영화 추천 앱이 필요했는데 정말 좋다’, ‘이런 서비스를 기다려 왔다. 만족한다’라는 이야기가 많다. 최근에는 ‘왓챠로 영화 별점을 매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시험 공부를 못 하겠다. 공부를 해야 하니 탈퇴하게 해 달라. 시험을 치르고 나서 다시 가입하겠다’는 메일까지 왔다고 한다. 왓챠의 사용자는 6월 12일을 기준으로 약 19만 명이다.
프로그램스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우선 사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또한 향후에는 추천 분야를 넓힐 계획이다.
(김 이사)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사용자들의 피드백이 들어오는데 모두 꼼꼼하게 읽어보고 있어요. 가장 많이 들어오는 요청사항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 “올 여름에 드라마 추천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한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해외 드라마까지 추천할 것입니다. 나중에는 도서, 음악, 웹툰 등의 추천 서비스도 제공하고 싶어요.”
프로그램스의 목표는 문화콘텐츠 추천 서비스를 통해 정보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정보 과잉의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푸시 알림도 많고, 포털사이트나 SNS에 가도 각종 정보가 넘쳐납니다. 그 속에는 정보를 가장한 광고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있고, 너무 오래되어 가치가 없는 정보도 있고, 중복된 정보도 있습니다. 때문에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어렵죠. 프로그램스는 그런 문제를 풀고자 합니다. 첫 서비스는 영화이지만, 향후에는 문화콘텐츠 전반에 걸쳐 정확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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