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의 역사/미셸 페로 지음·이영림 이은주 옮김/752쪽·4만 원·글항아리
방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 안에도 인류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 있다. 위부터 모리츠 루트비히 폰 슈빈트가 그린 ‘아침’, 조셉 시모어 가이가 그린 ‘꽃다발을 둘러싼 싸움, 살롱 안에 있는 로버트 고든 가족’,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왕비의 침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그는 왕의 침실부터 부부 침실, 여인의 방, 어린이의 방, 노동자의 방, 호텔 방 등 다양한 유형의 방 안에서 벌어진 역사를 낱낱이 모았다. 은밀한 방의 역사를 방대하게 복원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노학자가 옛 편지와 일기, 문학작품을 부지런히 뒤진 덕분이다. 이 책은 곧 여성사, 노동사, 왕실문화사, 성생활사에 이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기도 하다.
방은 명작의 산실이기도 하다. 프란츠 카프카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했지만 밤이 되면 자신의 방으로 기어들어가 홀로 온전히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하룻밤 사이에 방안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보험회사 외판원의 이야기인 ‘변신’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 독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카프카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에서 밤마다 사각사각 혹은 타닥타닥 소리가 들린다.
인간은 누구나 ‘방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는 저자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 특히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고 남성처럼 사무실이나 서재를 갖지 못했던 여성들은 자기 방을 소유하려는 갈망이 컸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21세 때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살게 되었을 때의 자유와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문을 잠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기분은 절정에 달했다.”
방을 소재로 한 컬러 도판이 풍부하게 실려 독서를 즐겁게 한다. 유럽사 위주로 써졌고, 매끄럽지 않은 번역 투의 문장이 많아 책이 술술 읽히지 않는 점은 아쉽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이제까지 나를 키워낸 내 방의 역사까지 돌아보게 된다. 자고 읽고 쓰고 명상하고 쉬는 사이 우리는 방에서 인생의 거의 절반을 보내지 않는가.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