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어떤 모습인가? 국회는 딱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장면들이 동시에 펼쳐지는 곳이다. ‘국회 관찰카메라’ 취재에 참여한 동아일보 정치부의 한 기자가 13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대정부질문 장면을 취재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얼리 버드-일찍 일어나는 금배지가 권력을 잡는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평소 오전 5시면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일어나 오전 7시 전에 국회 당 대표실이나 영등포구 당사로 출근한다. 김 대표는 출근하자마자 2, 3개의 비공식 미팅을 갖는다. 오전 7시 반 당의 국·실장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고 오전 8시 박기춘 사무총장,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 등을 만나 그날의 이슈를 점검한다.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에서 출퇴근하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기상시간도 오전 5시 전후. 자칫 출근길인 경인고속도로가 막히기라도 하면 출근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3일에는 오전 8시 20분 국회 대표실에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예방을 받기로 했으나 길이 막혀 황 대표가 10여 분 늦게 도착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렇게 국회는 일반의 예상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고위 당직자들 얘기이지만 오전 7시 반쯤 되면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에서 각종 조찬 모임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곤 한다. 참석자들의 규모와 분위기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누가 오느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갈린다.
3일 오전 7시 반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 초청 강연에는 40여 명의 민주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의원이 참석해 아침부터 성황을 이뤘다. 박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야권 대선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 같은 유력 인사가 강사로 초청돼 왔다고 해도 여야의 핵심 당직자들은 조찬 모임에 오래 앉아 있기는 어렵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회의를 주관해야 하는 만큼 미리 참모들과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작 10분 만에 자리를 떠 다른 조찬 장소로 이동했다.
국회의 하루는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다. 새누리당 초정회(초선의원 정책개발 연구모임) 소속 의원들이 11일 오전 7시 반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반도 통일문제와 정치개혁’을 주제로 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새누리당 의원들은 여당 소속인 만큼 각종 당정협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13일 오전 7시 반 국회 귀빈식당에는 김무성 심재철 박상은 윤진식 여상규 이철우 안효대 의원 등이 들어서고 있었다. 정부에선 국토교통부 서승환 장관, 박기풍 1차관, 여형구 2차관 등이 의원들을 맞이했다. 당정협의는 대개 국회 귀빈식당에서 조찬을 겸해 열린다. 이 귀빈식당은 여야 원내대표 회동은 물론 2007년 8월 한나라당 경선을 마친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배석자 없이 단독 회담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회의로 소통하는 인간)
조찬 회동으로 시동이 걸린 국회는 오전 9시부터 여야 불문하고 본격적으로 ‘회의 모드’로 전환된다. 국회 차원에서도 회의가 열린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오전 9시 전후 정진석 사무총장, 김연광 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일일 점검회의를 주재한다. 별다른 이슈가 없더라도 그날의 현안을 토론하고 특히 의장 주재의 각종 행사를 점검하는 게 핵심이다.
여야의 회의체는 이름만 다를 뿐 형식이나 내용은 엇비슷하다. 대표 또는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회의가 대부분이다. 대표가 주재하는 최고위원회의는 새누리당 민주당 모두 회의 명칭이 같다. 거의 매일같이 열리는 오전 9시 회의의 목표는 두 개다. 하나는 그날의 주요 이슈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를 언론을 통해 전달하는 것. 또 하나는 주요 이슈에 대한 전략 논의다. 전자(前者)는 대개 공개회의에서 논의된다. 의원들이 자기 앞에 놓인 ‘마이크 더미’를 통해 그날의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을 돌아가며 밝히는 게 그것이다. 대개는 의원들이 평소 생각하는 내용을 말하지만 별 이슈가 없을 때는 회의 전날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조경태 의원은 “어떤 주제를 갖고 어떤 표현으로 어떻게 풀어가면 좋겠느냐”고 기자들에게 자주 묻는 편이다. 새누리당 지도부 중에는 기자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면 다음 날 회의에서 고스란히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당 지도부 정도 되면 단어 하나하나도 고민한다.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12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그랬다. 김한길 대표는 “남북이 소득 없이 자존심을 겨루는 대화가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 물실호기(勿失好機·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음) 회담으로 한반도의 새로운 화해협력 시대를 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김 대표가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쓴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보좌진이 사자성어를 넣은 발언 초안을 가져가면 대개 지운다. 방송에 몇 초밖에 잡히지 않는 발언에서 사자성어를 인용하면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치 입문 전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감각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비공개 회의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2일 새누리당의 최고중진연석회의. 공개회의에선 이날 예정됐던 남북 당국회담 무산과 관련해 북한의 무성의한 태도를 성토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비공개로 전환되자 최근 진주의료원 폐지를 주도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회의장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분위기는 험악했다.
경남의 A 의원=“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홍준표 식으로 일처리를 하다간 당의 이미지만 나빠집니다.”
수도권의 B 의원=“홍 지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기 장사를 하는 것 아닌가요?”
수도권의 C 의원=“이대로라면 과연 내년 지방선거에서 홍 지사에게 공천을 줘야 합니까?”
물론 이런 내용은 대외적으로는 “중진 의원들은 진주의료원 사태 해결에 대해 노력하자는 의견을 내놓으셨다”(유일호 대변인 브리핑)는 식으로 감춰지는 게 대부분이다.
당에서 여는 회의에 비해 본회의 상임위원회 등 국회 차원에서 열리는 회의 출석률은 대체로 떨어진다. 당내 미묘한 현안은 본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본회의는 자신이 발언하지 않을 경우 꼭 참석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6월 임시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열린 10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 본청에선 연신 “의원님들께서는 회의장에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의원님’들의 행동은 여전히 거북이였다. 오전 10시 개의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은 여야 포함해 30여 명. 전체 재적 300명의 10% 남짓이다. 국회법 73조 1항에 따르면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 출석해야 열 수 있다. 60명만 있으면 개의할 수 있지만 제 시간에 본회의를 시작한 적은 거의 없다. 안내방송은 ‘출석 독촉’으로 바뀐다. “지금 바로 본회의가 개회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은 속히 회의장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방송 직후 120여 명이 무더기로 입장했다. 몇 명은 본회의장 정문 옆의 회의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기도 했다. 기자가 “좀 빨리 들어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한 여당 재선 의원은 “너무 일찍 들어가면 좀 없어 보이지 않느냐”며 농담처럼 말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본회의 속개 전에도 이런 과정은 반복됐다. 본회의 시작 시간인 오후 2시. 박병석 국회부의장이 이미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고 의원들은 오전보다 10명가량 적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법률소비자연맹 자료에 따르면 19대 국회 첫해인 2012년 본회의 출석률은 새누리당 평균 64.84%, 민주당은 67.10%, 비교섭단체 의원들은 53.72%에 그쳤다. 그래도 본회의장은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여야 의원들이 한곳에 모이는 장소. 종종 여야 의원들 간에 예기치 않은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11일 본회의장에선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 우연히 마주쳤다. 방청석에서 어렴풋이 들린 이들의 대화 한 토막.
남 의원=“2017년 대선에 나가실 텐데 권력 구조 개편을 해야 합니다. 안 의원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안 의원=“최장집 이사장(안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과 논의해 보겠습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회의 중에 그 효용성이 의문인 회의도 있다. 3월 22일 본회의장. 여야는 ‘방송공정성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재석 216명에 찬성 202명, 반대 4명, 기권 10명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반대한 의원 네 명 중에는 심지어 이 특위를 제안했던 민주당에 소속된 의원도 한 명 있었다. 이 의원은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특위까지 구성해 하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이며 비용 낭비”라고 비판했다. 현재 국회에서 가동 중인 특위는 모두 9개. 이 중 2개는 12일 본회의에서 통과돼 아직 위원회 구성도 안 됐다. 나머지 7개 중 올해 4월 특위 위원장과 위원을 채워 활동을 시작한 특위는 6개. 하지만 이 중 3개 특위는 전체회의를 단 두 번 열었다. 다른 3개 특위도 3∼5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서로 물고물리는 ‘공생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전체회의가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맨 뒷자리에서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 공무원들이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답변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전생의 원수 같은 부부?-금배지와 공무원
의원회관 내 의원실 문턱은 늘 붐빈다. 정부부처 공무원들과 기업의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들뿐 아니라 민원인들의 발길까지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공무원은 국회의사당 및 의원회관의 대표적 단골손님이다. 부처에 영향을 끼치는 민감한 법안이 논의되거나 사건이 터지면 국·실장급 실무책임자들은 국회로 호출되는 날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보다 더 많을 정도다.
국회에서 장관은 외견상 ‘을(乙)’처럼 보인다.
5일 국회 산업통상위원회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불러 전체회의를 열고 원전비리 사건에 대해 논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돌아가며 큰 목소리로 윤 장관을 질타했다.
오영식 간사(위원장 대행)=“다음은 이어서 (민주당) 전순옥 의원님께서 질의해 주시겠습니다.”
전순옥 의원=“…….”
오 간사=“전순옥 의원님?”
전 의원=“(격앙된 어조로) 정말 우리가 질문 계속하고 앉아 있어야 됩니까? 진짜 이거, 위원장님? 도대체 우리가 정부도 그렇고 사장님, 장관님, 우리 국회의원들 앉아서 계속해서 이런 얘기만 하고 앉아 있어야 합니까? (두 팔을 펼치며) 이게 뭐하는 겁니까, 도대체? (두 팔을 다시 펼치며) 이게 국회가 해야 할 일입니까? (15초간 정적) 그만하시죠, 위원장님. 그리고 장관님, 사장님들 그만하시죠, 이제. 뭘 더 얘기합니까, 여기서….”
오 간사=“(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어휴….”
윤 장관=“의원님 저도….”
전 의원=“장관님 사직서 내셨다고 하셨죠? 장관님 사직서 내신 김에 그만두십시오. 이거 또 제스처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면 비리 절대 못 끝냅니다. 고위공직자들이 자신들이 어떤 결단 내리지 않으면 이런 고리 못 끊습니다. 안 됩니다.”
전 의원의 불같은 질타가 계속되자 회의장 곳곳에서 “어휴…” 하는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창일 산업통상위원장은 정부의 대책이 못 마땅했는지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른 채 “짜증나네, 짜증나…”를 연발했다.
국회는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 공무원을 불러댄다. 전화 통화나 서면으로 대체해도 될 것 같은 일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공무원을 호출한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경제부처 D 국장은 11일 오전 10시경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한 직후 국회로 올라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상임위가 열리니까 참석해 달라”는 것이다. D 국장은 예정됐던 회의와 저녁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충북 청원군 오송역에서 오전 11시경 서울행 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점심은 기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한 뒤 국회에 도착하니 오후 1시경. 그는 예상 질의에 대한 답변 자료를 검토하며 국회 회의실 주변에서 대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호출이 없었다. 회의 시작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5시경 전화가 걸려 왔다. “다른 법안 검토에 시간이 많이 걸려 그 안건은 오늘 논의가 안 됐다. 내일 오전 10시에 다시 회의를 하기로 했다. 내일 다시 오라”는 내용이었다. D 국장은 “4시간을 기다렸다가 회의에 들어갔는데 질문이 별로 없어서 그냥 앉아 있다 나오는 일도 있었다”며 “국회 호출 한 번에 왕복 6시간 거리를 오가고 하루를 공치는 경우도 있다”며 허탈해했다.
공무원 호출에는 법률안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도 있다. 올 초부터 법안 처리를 위해 담당 상임위 의원 사무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중앙부처 E 서기관은 최근 법안에 이리저리 트집을 잡던 한 보좌관의 호출을 받았다.
“의원님이 조만간 지역구 내 초등학교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컴퓨터실의 컴퓨터들이 너무 낡았다고 하네요. 컴퓨터들을 새 기종으로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E 서기관은 상부에 보고한 뒤 결국 다른 예산을 줄여서 요구 사항을 들어줬다. 그는 “민감한 법안이 거론될 때면 논의 단계에서부터 상임위 소속 의원들로부터 온갖 민원이 쏟아진다. 그럴 때면 정말 욕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이 늘 억지로 국회 문턱을 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된 삼권 분리 국가. 하지만 미국 등과 달리 한국 헌법은 정부 각 부처에도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는 입법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안을 스스로 발의하기보다 국회의원을 통한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의원입법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의원을 통해 발주를 하는 것이라 ‘청부입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청부입법이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누이 좋고 매부 좋기’ 때문이다.
각 부처가 정부입법을 하려면 부처 간 협의는 물론이고 공청회, 법제처 심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의원입법으로 추진할 경우 이 같은 절차를 모두 생략할 수 있다. 힘 있는 의원을 대표발의자로 잡으면 법안 처리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즉각 성과를 내야 하는 장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의원입법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 공약이나 정부 국정과제 관련 법안들은 당정협의 등을 거친 뒤 당 지도부가 발의할 의원을 할당하기도 한다”며 “정부는 공약의 현실화에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좋고, 의원 역시 발의 실적이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종종 공무원들이 국회의원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경우도 있고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일부 의원들은 공무원들이 몰려올 시간을 피하기도 한다. 서용교 새누리당 의원은 공무원과 민원인들의 방문이 지나치다 싶을 경우엔 국회도서관 6층 의원열람실로 잠시 피신하는 방법을 즐긴다.
장관들에게 ‘갑(甲)’으로 행세하던 의원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질 때도 있다. 특히 자신들의 후원금 ‘돈줄’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할 때 더욱 그러하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평소에 곁을 잘 두지 않고 주변에 싸늘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후원자들을 모아 놓고 했다는 말은 요즘도 국회 주변에서 종종 회자된다. 그는 “형님 누님들이 안 계셨다면 어떻게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끝까지 여러분을 모실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시길 앙망합니다”라며 눈물까지 글썽거렸고 마무리로 허리를 100도가량 굽히는 이른바 ‘(휴대전화) 폴더 인사’까지 했다. 골치 아픈 지역 민원인의 전화를 받지 않던 어느 의원은 갑자기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는 “예, 회장님”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장시간 통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 의원은 “나를 뒤에서 많이 도와주시는 분이야”라고 했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보좌진에게 험하게 대하기로 유명하다. 지시한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종이로 머리를 툭툭 치며 심하게 꾸짖는다. 비슷한 유형은 새누리당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 중진은 하도 보좌진을 자주 교체해 국회에서 ‘보좌관 사관학교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역사는 여전히 밤에 이뤄진다
오후 6시 반 전후, 국회 곳곳에선 차량들이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13일 오후 6시경에는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대정부질문을 마친 뒤 여야 의원들이 공무원들과 한꺼번에 국회를 빠져나갔다. 이들은 주로 어디로 갈까? 이번 주에 만난 50여 명의 여야 의원 중 제사 등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곧바로 귀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소한 1건의 만찬 일정은 소화했다.
최근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 오후 7시가 넘자 남경필 정병국 유정복(현 안전행정부 장관) 홍문종 의원 등이 모여들었다. 경기도 출신 새누리당 3선 이상 의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날이었다. 이들은 국회가 아니라 이 모임에서 지역 주요 현안을 논의해왔다. 이날 현안은 내년 지방선거 중 경기도지사 문제. 특히 현 김문수 경기지사가 3선에 도전할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3선 도전을 포기할지에 논의가 모아졌다.
“문수 형(김 지사)은 어떻게 하신대요?”
“(김 지사) 주변에선 3선에 도전하라고 설득하는 거 같더라고.”
결국 이 자리에선 조만간 김 지사를 만나 내년 출마 여부를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김 지사의 출마 여부에 따라 새누리당 경기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유정복 장관과 정병국 의원의 행보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당 사무총장을 맡은 홍문종 의원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내년 지방선거는 다른 지역 의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 얼마 전엔 여의도에서 새누리당 경북 지역 의원들이 모였다. 경북 경산-청도 출신인 최경환 의원의 원내대표 선출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놓고 교통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 “문수형 출마한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
■ 공천 교통정리 등 비밀논의 빈번… 핵심 당직자는 밤에 더 바빠, 김한길 일정 4분의 3이 비공식… 與지도부는 툭하면 靑 불려가
여권의 텃밭인 경북 지역은 여전히 새누리당에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는 곳. 자연스레 내년 공천권을 놓고 현역 의원들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경북도당위원장 자리를 놓고선 얼마 전까지 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이철우 의원과 경제통인 김광림 의원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러다 결국 11일 국회에서 열린 경북 지역 의원들 모임에서 김 의원이 양보를 하면서 이철우 의원이 차기 도당위원장을 맡기로 정리됐다.
여야 핵심 당직자들은 저녁이 더 바쁘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요즘 최소한 2건의 저녁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워낙 만나자는 사람들이 많아 그의 차량 뒷자리에 꽂혀 있는 주간 일정표는 수시로 수정된다. 하긴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에는 시간이 아깝다며 화장실에서도 급하게 뛰어나오는 그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비공식 일정이 공식 일정보다 보통 3배는 많다. 체질상 술을 잘 못하는 김 대표는 ‘술 안 마시고도 마신 사람처럼 유쾌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게 평소 전략. 이렇다 보니 예기치 않은 일정이 생기기도 한다. 김 대표는 하룻밤에도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모임을 가질 때가 다반사다. 최 원내대표는 얼마 전 귀갓길에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긴급한 회의를 하기 위해 다시 차를 돌려 시내로 향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전히 자주 통화하는 것으로 알려진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저녁 식사 도중 30분 넘게 박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밤에는 국회에선 열기 어려운 은밀한 모임도 종종 열린다. 12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선 조촐한 축하 파티가 열렸다.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된 새누리당 윤영석 의원(경남 양산)에 대해 2심 법원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윤 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동료 의원들이 축하하는 자리였다. 한 참석자는 “양산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질 줄 알았는데 윤 의원이 기사회생했다. 정치를 떠나 인간적으로 축하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개별 의원들마다 다르지만 대개 이런 식으로 ‘국회와 그들’의 일과는 마무리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주요한 정치적 결정을 자신들만 아는 공간에서 비밀리에 하는 것일까? 우리가 아직 관찰하지 못한 국회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여전히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승헌·민동용·길진균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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