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발언이후 국채금리 급등, 수출입銀 ‘濠캥거루본드’ 발행 미뤄대기업들도 자금조달 계획 잇단 수정, 정부 “하반기경제 주요 변수” 촉각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란에 휩싸이면서 국내 기업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외화채권을 발행하려던 대기업과 금융공기업들이 앞다퉈 발행 일정을 연기하고 있는 것. 이들은 그동안 낮은 금리로 외화 채권을 발행했지만 최근 글로벌 채권 금리가 뛰면서 외화 조달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호주 금융시장에서 3억 달러 이상의 ‘캥거루 본드’를 발행하려 했던 수출입은행은 최근 이 계획을 연기하기로 했다. 캥거루 본드는 외국기업이 발행하는 호주달러로 표시된 채권을 말한다. 수출입은행뿐만 아니라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대기업도 당초 이달 중으로 계획했던 외화채권 발행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 역시 환율 안정을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검토했으나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아직 발행 시기를 잡지 못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외평채 발행 일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일 연 1.66% 수준이던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시사한 지난달 22일을 전후로 급등하기 시작해 이달 12일에는 2.25%까지 올랐다.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세계 각국의 국채나 회사채 금리도 일제히 상승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미국 채권 금리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지난해 391억 달러(약 41조6000억 원)로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난 한국의 외화채권 발행 규모는 감소세로 돌아서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제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외화채권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외국계 은행 한국지점들도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당분간 외화 조달이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기준금리 인하로 본격적인 경제회복세가 나타나길 기대했던 정부도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위기가 국내 외환, 채권시장으로 확대되거나 소비, 투자 등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