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판 없는 가게, 이름 없는 상품 등 브랜드를 노출하지 않는 이른바 ‘숨바꼭질 마케팅’을 벌이는 업체가 늘고 있다. 간판이 없는 한남동 싱글 몰트 위스키 바 ‘볼트82’ 입구.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 싱글 몰트 위스키 바 ‘볼트82’의 내부 모습.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3] 진열된 제품의 브랜드명을 알리지 않는 현대백화점의 남성 잡화 편집매장 ‘로열 마일’. 현대백화점 제공 [4] SPC가 운영하는 간판 없는 디저트 카페‘ 패션 5’. SPC 제공
1월 문을 연 이곳엔 간판이나 안내 문구가 없다. 가게 이름을 ‘볼트82’라고 소개한 마서우 사장(32)은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우리 가게의 포인트”라며 “간판을 달거나 가게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일절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업체들
한남동의 또 다른 바 ‘스피크이지 몰타르’는 간판이 없는 것은 기본이고 출입구를 찾기도 어렵다. 문을 두드리면 종업원이 나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며 일종의 ‘설정극’을 한다. 그만큼 비밀스러운 공간임을 강조한다. 출입문 바깥은 조용했지만 안에는 40여 명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이곳은 개장 초기만 해도 간판이 있었으나 6개월이 지난 뒤 없앴다. 스피크이지 몰타르 관계자는 “뜨내기손님이 많아지자 불편해 하는 단골들이 생겨났다”며 “간판을 없애 아는 사람만 오는 가게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간판 없는 가게들은 용산구 한남동과 이태원, 홍익대 앞, 강남구 청담동 등 주로 젊은층이 즐겨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태원의 일본 가정식집 ‘메시야’도 간판이 없다. 총 좌석이 10석밖에 안 되는 작은 가게지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김건희 메시야 사장은 “한 끼를 먹더라도 맛집을 찾아가는 시대”라며 “간판이 없거나 홍보 수단이 없어도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 브랜드를 노출하지 않는 기업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영업 전략이다. 자신을 감추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른바 ‘숨바꼭질 마케팅’이라는 평가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게 불친절하게 보이지만 온라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게 하는 바이럴 마케팅, 궁금증을 유발하는 티저 마케팅, 선택 받은 사람만 대상으로 하는 VIP 마케팅 등 많은 전략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남성 잡화 편집매장 ‘로열 마일’을 열면서 브랜드 제품의 로고나 브랜드 이름을 거의 노출하지 않았다. 이곳엔 벨트, 휴대전화 케이스, 문구 등 30개 브랜드 제품이 전시돼 있다. 이성환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바이어는 “소비자들이 제품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미국 뉴욕 소호 지역의 작은 옷가게나 일본 도쿄의 유명 라멘 가게 가운데 간판이 없어도 오랫동안 명소로 꼽히는 곳이 많다.
정지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기업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콘텐츠나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