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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View]“코치님이 맞네요” 김병현 고집 꺾은 ‘관심 리더십’

입력 | 2013-06-17 07:00:00

지난해 10월 넥센 선수들과 상견례를 하고 있는 이강철 수석코치의 모습. 한국프로야구 잠수함 투수의 역사를 쓴 이 코치는 정든 고향 팀 KIA를 떠나 넥센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스포츠동아DB


넥센 이강철(47) 수석코치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로 꼽힌다. 해태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1989년부터 10년 연속 10승(4년 연속 15승 포함)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고, 팀의 우승에 다섯 차례(1989·1991·1993·1996·1997년)나 큰 힘을 보탰다. 2000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잠시 이적하기도 했지만, 이듬해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고향 광주에서 은퇴했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말 이 코치의 넥센 이적은 야구계에 적잖은 놀라움을 안겼다. 정든 고향팀을 떠나 넥센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이 코치를 스포츠동아가 만나 그간의 심경과 새 팀에서의 마음가짐을 들어봤다.

보스 같은 리더보단 끌어주는 리더 목표
선수들에 방법 제시…선택은 본인의 몫
김병현도 꾸준히 관심 보이니 잘 따라와

염경엽 감독 빈틈 없죠…항상 긴장해야
최근 넥센의 위기? 자신감 회복이 우선


-KIA의 전신 해태 시절부터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셨습니다. 팀을 옮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요.

“사실 선동열 KIA 감독님과 KIA 구단 관계자분들께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죠. 염경엽 감독님께 수석코치 역할과 함께 투수 전체를 총괄해 달라는 제의를 받아서, 나름대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옮기게 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내가 오래 있었고 잘 해줬던 팀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고, 죄송했죠. 처음에 제의를 받았을 때는 저도 좀 놀랐거든요. 내가 광주를 떠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어요. 선수 시절에 삼성을 다녀와 보니, 여러 가지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고요. 그래서 어렵게 결정했죠.”

-넥센에 와 보니 어떤 점이 가장 인상적이셨나요.

“예전 현대 시절부터 잘 만들어 놨던 팀의 방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가 그때부터 잡아 놓은 웨이트 트레이닝 시스템 같은 것들, 또 밖에서 보기에도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처음 와서는 일단 토종 선발을 잘 만들어야 하는 팀이니까 그런 쪽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제 부족한 점을 감독님과 우리 코칭스태프들, 선수들이 잘 메워줬죠.”

-선수들과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선수들이 참 착하고, 알아서 자기 스케줄대로 잘 움직여줘요. 처음에는 내가 KIA에서 와서 약간 어색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가을 마무리 캠프를 하면서 젊은 투수들에게 많이 다가가고 1대1로 지도하다보니 점점 잘 따라 주더군요. 사실 저도 선수들 만날 때 긴장을 많이 했는데, 주장 이택근을 비롯한 선수들이 마음을 많이 열어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된 염경엽 감독은 어떤 분인가요.

“항상 제가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분이죠. 빈틈이 없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세요. 코치들도 항상 야구에 대한 생각을 놓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하루를 쉴 때도 늘 야구를 생각할 수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게 주문하세요. 처음엔 힘들 수도 있는데, 1∼2년 하다 보면 결국은 모두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거예요. 저 같은 경우도 수석코치를 하면서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보니 몇 번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그 부족한 부분을 잘 이해해 주십니다.”

넥센 투수들에게 투구 동작을 설명하고 있는 이강철 코치(오른쪽). 스포츠동아DB


-‘지도자 이강철’의 교육관이 궁금합니다.

“저는 ‘보스’ 같은 느낌이 아니라 끌어주는 리더십 쪽을 많이 생각했어요. 뒤에서 하나하나 시키는 것보다 솔선수범하고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쪽이죠. ‘무조건 이렇게 해’라고는 안 하려고 해요. 길을 제시한 다음 선택은 본인에게 맡기는 거죠.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는데, 너한테 맞으면 하고 맞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요. 대신 선수가 선택을 하면, 그 길에 꾸준히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심어주려고 해요.”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처음 불펜 코치를 할 때 간베 토시오(2008∼2009년 KIA 투수코치) 코치님과 함께 하면서 어린 선수들에게는 지도자가 열정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배웠어요. 잠깐 하다 마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고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 그때는 사실 저도 힘들었는데, 지금 해보니까 그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드리죠. 어린 선수들은 아직 자기 것이 없기 때문에 폼이 완벽하지 않고, 그래서 제구력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꾸준히 봐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김병현 선수가 공공연하게 ‘멘토’라며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는 어떤 제자인가요.

“그전에는 한국 들어올 때 한두 번 인사나 하는 정도였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부담이 됐죠. 메이저리그에서 잘 했던 투수고, 주변에서도 고집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가을에 따로 만나 이야기할 때, ‘다시 처음부터 하체 쪽으로 시작을 해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흔쾌히 내 방법을 따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도 ‘이게 맞네요’ 하면서 잘 따라와 줬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오래 봤던 후배처럼 편안한 느낌이에요. 등판 안 하는 날에도 캐치볼 할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병현이에게도 아까 말한 것처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서예요. 그런 게 통한 것 같아요.”

-기념비적인 선수 생활을 하셨죠. 지금까지도 자랑스러운 점이 있다면요.

“당연히 10년 연속 10승과 10년 연속 세 자릿수 탈삼진이죠. 내가 상 같은 걸 많이 못 받아 봤잖아요. 유일하게 받은 게 한국시리즈 MVP(1996년)고, 올스타전도 선동열 감독님과 같은 팀이니 나갈 수가 없고…. 오로지 꾸준함 하나가 내 자신감인 거죠. 잠깐 확 잘하는 선수도 물론 좋지만, 꾸준하게 길게 하는 것도 가치 있잖아요. 선수들한테도 ‘야구 오래 해야 하지 않냐’는 얘기를 많이 하고요. 지금 현역에 있는 선수들 가운데 이 기록을 깰만한 투수는 별로 없어 보여요. 실력이 기본이지만 운도 따라야 하고 부상도 조심해야 하니까요. 그런 걸 보면 쉽지 않은 기록이라 자부심이 있어요.”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으시잖아요. 올해 새 제자들도 그 영광을 누려보길 바라실 것 같습니다.

“미리 설레발은 안 칠 생각이에요. 그러나 올해는 우리 선수들이 꼭 포스트시즌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포스트시즌은 분명히 정규시즌과는 다르거든요. 가을잔치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운드에서의 마음가짐이나 전략 같은 부분에 대해서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아요. 꼭 전수해 주고 싶네요.”

-잘 나가던 넥센이 최근 힘든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사실 우리도 언젠가는 고비가 한번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KIA 시절에 16연패라는 경험도 해봤고…. 그런데 결국은 선수들이 하나가 돼 이겨내야 하는 거거든요. 본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좋았던 분위기를 다시 가져와야 진짜로 강한 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자신감을 가져라’는 얘기를 계속 하고 있어요. 개인이 강한 것보다 서로가 하나로 강한 그런 팀이 돼야죠.”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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